세상을 지배하다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패러다임

극장에서 상영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를 솔로남 혼자 보는 것. 이는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로맨스라는 현실을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 공감대를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은데 별것 아닌 장면에도 웃음을 터트리거나 감동하는 주위 커플들의 반응을 접하게 되면 영화와의 공감대가 조금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느끼지 못한 정서를 그들은 십분 느끼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영화와의 괴리는 더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관객이라면 씁쓸한 현실과 영화의 낭만을 구분 지어 관람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랑에 너무나도 굶주린 싱글이라면 영화가 곧 현실이라도 되는 양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앞서 말한 내용은 로맨스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솔로남이라면 모를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즉, 자신이 처한 현실과 영화의 내용이 절묘하게 맞물려 있을 때 영화의 재미와 감동은 더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음악도 마찬가지, 이별을 경험한 사람에게 이별을 노래하는 곡이 와 닿는 이유와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싱글남 아니, 누구에게나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만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있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와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을 연출한 정용기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커플즈>다.

제목만 보면 마치 커플을 위한 맞춤형 영화일 것 같은데 그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영화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인 복남(오정세), 애연(이윤지), 유석(김주혁), 나리(이시영), 병찬(공형진) 모두가 싱글이며, 각각의 캐릭터가 얽히고설켜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커플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투탑의 남녀 주인공이 극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면서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는 식의 다소 식상한 과정을 겪게 마련인데 <커플즈>의 경우 개성만점 캐릭터들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고, 클리셰한 구성을 벗어난 극의 내러티브가 되게 탄탄하기 때문에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된 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영화를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작품이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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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영화는 우연의 반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우연적인 일은 자주 생기지만 보다 드라마틱한 영화를 위해서 우연은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그런데 <커플즈>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뜬금없이 나타난 농구공 때문에 교통사고가 생기거나 은행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치한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일들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물며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왜 일어나게 된 것인지 대부분의 영화는 구태여 설명하지도 않는다. 왜? 영화이니까...

어떻게 보면 <커플즈>는 영화 같은 일을 부정하는 작품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게 마련인데 영화라는 특혜를 입었다고 안이하게 접근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래' 뭐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커플즈>는 우연적인 일들을 하나하나 모두 설명한다.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 플래시백이나 인터컷, 교차편집 등의 기술적인 부분들을 십분 활용하여 앞에서 보여준 결과의 당위를 기어코 이끌어 내고야 만다. 그렇게 설명된 우연은 필연이 되고 곧 인연이 된다. 이것이 앞서 말한 내러티브의 탄탄함이다. <커플즈>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는 영화이다.

사실 <커플즈>의 이야기 범위는 너무나도 좁다. 정해진 시간 안에 디테일한 요소들까지 하나하나 풀어내려다 보니 이야기의 범위가 좁아질 수 밖에 없는 노릇. 그러나 이야기의 깊이가 아주아주 깊다. 마치 까고 또 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양파 껍질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벗겨진 껍질들은 아귀가 아주 딱딱 맞아 떨어진다. 결국 <커플즈>는 독특한 구성과 완성도 높은 연출은 물론 탄탄한 시나리오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나 <쩨쩨한 로맨스> 이후 다소 침체되었던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가장 안 팔리는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로맨틱 코미디이다. <커플즈>라면 그동안의 판도를 완벽하게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볼 땐 이 영화 최소 500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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