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캐나다여행을 시작한 이튿날, 나는 이른 새벽부터 바삐 움직였다. 밴쿠버는 캐나다에서도 가 볼 만한 곳이 워낙 많은 도시이지만 밴쿠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30여 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내 의지가 아니긴 했지만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었고, 밴쿠버의 소소한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하루를 아주 일찍 시작했다. 2시간 넘게 밴쿠버의 적막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거리를 활보한 나는 호텔로 돌아와 반신욕을 하며 함께 여행을 했던 악랄가츠가 잠에서 깨길 기다렸다. 그리고 체크아웃...

레인맨  :  오늘 가야 할 곳이 참 많네요.
가츠     :  갈 곳은 많은데 오늘 저녁 밴쿠버를 떠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그날 저녁 사스카툰행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비아레일역에 먼저 들러 예약해 놓은 티겟을 받고 거추장스러운 짐도 맡겼다. 악랄가츠와 나는 버스와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기차역으로 이동하던 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정과 동선을 재점검했다. 밴쿠버 다운타운과 공립도서관, 차이나타운, BC 플레이스 스타디움 등 가야 할 곳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계획에 넣은 곳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최대한 쥐어짜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와중에 행운이 찾아왔다. 기차역까지 가는 길을 잘 몰라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조금 버벅거리고 있었는데 친절한 아저씨가 우리를 기차역까지 안내해 주었던 것이다. 얼마 전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적도 있는 '땡큐형'(아래 링크 참고)이었다.


땡큐형 덕분에 가뜩이나 부족했던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보다 쉽게 기차역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티켓을 받고 짐을 맡겼다. 그리고 다시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방향을 돌려 아주아주 저렴하고 맛있는 조각 피자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밴쿠버 공립도서관이었다. 사실 악랄가츠는 캐나다까지 와서 굳이 도서관에 가야 할 필요가 있냐며 그리 달가워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밴쿠버에서 가장 기대되는 일정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건물의 독특한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지만 여러 영화 속에 등장했던 밴쿠버 공립도서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내에서 '뻑큐형'이라고 부르게 된 밴쿠버의 막말남을 만난 탓에 시간이 약간 지체되기는 했지만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도서관 입구의 꽃집에서 꽃을 고르고 있는 여인.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도서관 앞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처자.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단골 영화촬영지, 밴쿠버 공립도서관!"

밴쿠버 공립도서관은 그 독특한 외관 때문인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심심찮게 만나 볼 수 있다.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파렐 등이 출연했으며 故히스 레저의 유작으로 알려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루시 리우 주연의 액션 영화 <엑스 vs 세버>,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6번째 날> 등이 밴쿠버 공립도서관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품성과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들은 아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도서관 앞에서 차량들이 폭발하고 건물 벽에 총알이 박히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밴쿠버 공립도서관은 캐나다에서 3번째로 큰 공공도서관으로 4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해마다 대출되는 책만 해도 1000만 권에 이른다. 밴쿠버에 22개의 분관이 있으며, 도서관 광장(Library Square)에 본관이 있다. 도서관 광장에는 본관 뿐만 아니라 카페와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꽃가게, 피자가게, 음식점, 커피숍, 미용실, 기념품샵 등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도서관 광장에는 1년 365일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 사람도 아주 많다. 밴쿠버라는 도시 자체가 한국 유학생들로 넘쳐 나긴 하지만...

본관의 모습은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한다. 이 독특하고 웅장한 외관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밴쿠버 공립도서관의 진가는 내부에서 드러난다. 외관도 훌륭하지만 내부의 모습이 더욱 독특하고 아름답다. 참고로 밴쿠버 공립도서관은 유명 건축가 모쉐 사프디(Moshe Safdie)가 설계했다. 그럼 지금부터 모쉐 사프디가 디자인한 도서관 내부를 사진과 함께 구경해보자.


ⓒ Franchis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 엑스 vs 세버의 한 장면. 폭발하는 차량 뒤쪽으로 밴쿠버 공립도서관이 보인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외관은 충분히 구경한 것 같으니 이제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안에서 본 본관의 모습은 이러하다.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따뜻한 햇살이 내부로 스며든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카페가 늘어서 있어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방음시설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도서관 내부에서 밖의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도서관의 독특한 모습에 반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흑형이 나타났다.
자신을 언더그라운드 랩퍼라고 소개한 그는 직접 만든 CD까지 보여 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CD를 사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그런 그에게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엘리베이터의 대비가 재밌어 보이길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주머니 두 분이 자신을 찍는 줄 알고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도서관 내부에서 찍은 사진.
원래 내부에서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는데 우연찮게 대여섯 장의 사진을 찍게 되었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그렇게 찍은 두 번째 사진.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서적들이 진열된 공간인 듯 하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공부에 몰입하고 있는 한 여학생의 뒷모습.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도서관 내부를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와 도서관 광장(Library Square)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광장은 이런저런 사람들로 북적였다. 따스한 햇살을 벗 삼아 사색을 즐기는 사람부터 샌드위치 등을 먹으며 점심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친구 혹은 연인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엄마, 그리고 나처럼 사진을 찍는 여행객 등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구경하다 보면 1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진다.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이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사람 구경이 지겨워질 만하면 있던 사람은 가고 어김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했다. 도서관이 밴쿠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유동인구가 워낙 많았다. 특히 젊은 사람들과 예쁜 처자들이 많아 사람 구경하는 재미는 무척이나 쏠쏠했다. 악랄가츠와 나는 갈증도 달랠 겸 아예 도서관 건너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죽치고 앉아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태우면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츠     :  이 자리 좀 짱인듯.
레인맨  :  우리 여기에 올인하죠.

밴쿠버에서의 부족했던 시간을 걱정했던 우리는 조급했던 마음을 쿨하게 다잡았다. 관광 명소 몇 군데 찍어 가며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이 자리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곳은 다른 곳에 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보상하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했음은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을 보내도 좋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다. 훗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지인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지인     :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에요?
레인맨  :  밴쿠버 공립도서관 사거리 스타벅스요!

그때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혹자는 먼 곳까지 여행을 가서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 무의미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실상에 비해 이름만 부풀려진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캐나다를 더욱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현지인들의 체취를 보다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의 한 과정이었다. 나는 이러한 여행 방식을 앞으로도 고수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광장에서 담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하는 것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개성 넘치는 캐나다 현지인들의 모습을 마음껏 구경하고 싶다면 밴쿠버 공립도서관 사거리 스타벅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라!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남남 커플과 여남 커플의 대조적인 모습.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커플 중 한 남자가 햇살에 취해 잠에 빠져 들었다.
그 아래 또 다른 남남 커플이 보인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
개도 나처럼 사람 구경을 하느라 신이 났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댔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올 블랙 패션으로 태양열을 흡수하고 있는 아저씨.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신문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인에게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Public Library,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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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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