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부러진 법과 양심

8~90년대를 주름잡은 한국영화계의 거장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컴백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를 아주 신명나게 꼬집은 영화 <부러진 화살>을 들고 관객들을 찾은 것. <부러진 화살>은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명 '석궁 테러 사건'을 극화한 작품으로 부러진 법과 양심에 맞서 싸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책으로도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정지영 감독 역시 배우 문성근으로부터 책을 받아 읽고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한 문성근은 이 영화에서 꼴통 보수 판사로 등장하여 관객들의 분노를 돋운다.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인이자 배우 문성근이 연기하는 보수 꼴통의 연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완벽에 가깝다.

배우 안성기의 연기로 만나볼 수 있는 김명호 교수는 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다. 이후 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른다. 어떠한 사유가 되었든 석궁으로 판사를 위협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받기란 쉽지 않은 일. 허나 이야기가 전개되고 사건의 진상이 파악되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의 공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건 되게 위험하다. 화살을 쏘았든 쏘지 않았든 판결에 대한 불만을 위협으로 발산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니까.

<부러진 화살>은 사회 고발성이 짙다는 이유로 영화 <도가니>와도 비교할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다는 것 또한 비슷하다. 하지만 느껴지는 감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도가니>를 보고 난 후에 느껴지는 감정이 뭔가 우울하고 가슴 아픈 응어리라고 한다면 <부러진 화살>을 보고 난 후에 느껴지는 감정은 아주 시원하고 통쾌한 활력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재미도 있다. 아니,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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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분노하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상식을 벗어난 공판 과정을 지켜보며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의구심을 느끼게 된다.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지 사뭇 진지하고 엄숙한 장면에서도 관객들은 은근히 웃음을 터트린다. 피고인 김경호(안성기)가 기자들의 질문에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대놓고 웃어도 좋을 법한 상황임에도 오히려 씁쓸한 기분이 느껴진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극중 대부분의 내용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 자체도 매우 훌륭하다 할 수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며 영화라는 매체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세상에는 속속들이 까발려야 할 일들과 더 널리 알려져야 할 일들이 참 많이 있다. 물론 영화 말고도 다양한 매체들이 존재하고 있고 인터넷 세상이라 정보의 공유가 보다 수월해졌지만 영화처럼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가져다주면서 공론화가 절실한 사안을 자연스럽게 풀 수 있는 매체도 참 드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될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부러진 화살>은 흥행을 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영화이다.

<부러진 화살>을 관람한 날은 공교롭게도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치명적인 매력의 남자, 위대한 정치인, 21세기 융합지도자, BBK 저격수, 17대 국회의원 정봉주의 대법원 최종 심판이 있던 날이었다. 법리를 넘어 양심마저 저버린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에 분노를 느낀 상황에서 영화를 관람하니 분노감을 더 크게 느낀 것 같다. 반면 영화가 주는 통쾌함 덕분에 우울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또한 사실이다. 마음껏 분노하라. 마음껏 분노하자. 우리들의 분노가 모이고 또 모이면 세상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세상이 바로 서게 될 때의 그 통쾌함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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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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