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기술적 진보의 종결

1년 중 가장 핫한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서 영화시장에서도 들뜬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과 <셜록홈즈: 그림자 게임>을 비롯한 헐리웃 대작들과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계보를 잇는 <마이웨이> 등이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 이외에도 다양하고 또, 좋은 영화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영화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마이웨이>는 국내 최초로 2차 세계대전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아 왔다. 또한 한·중·일 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만남,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돌아온 강제규 감독의 귀환, 압도적 스케일과 국적을 초월한 인간애의 드라마 등 그동안 숱한 화제를 뿌리며 관객들의 기대치를 높여 왔다. 그리고 오늘, <마이웨이가>가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다.

<마이웨이>를 관람한 후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희열과 자부심이었다. 영화의 제작 과정이나 마케팅 등 영화 외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이 워낙 충만했기 때문에 '재밌다'와 '자랑스럽다'라는 느낌이 물밀듯이 올라왔다. 여기서 '자랑스럽다'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잘 만든 한국영화를 보고 나면 대체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느낌을 받곤 하는데 <마이웨이>는 가능성에만 머물렀던 요소들을 결과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완성도 높은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것에 내심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마이웨이>에는 145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전투 시퀀스가 등장하고 시퀀스를 이루는 장면 하나하나마다 기술적으로 아주 훌륭한 완성도를 느끼게 한다.

사실 기술적인 한계는 어느 영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계를 받아들이는 순간 기술적인 진보는 더뎌질 수 밖에 없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극복할 수만 있다면야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한계를 느끼지도 않았을 터, 극복할 수 없다면 그 한계를 잘 숨기되 오히려 강점으로 바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저런 실험과 연구를 하다 보면 노력이 곧 능력이 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강제규 감독은 한국영화가 극복할 수 없는 기술적 한계를 최대한 감추면서 그것이 강점으로 부각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제대로 연마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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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전쟁영화와 전투신의 완성도에 국한된 내용이다. 즉, 다른 장르의 영화나 기술보다 예술에 중점을 둔 영화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럼 전투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낫다

고 볼 수는 없지만 딱히 부족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에는 13년이라는 세월의 갭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잘해야 본전에 불과한 비교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웨이>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비교하는 이유는 두 작품 모두 노르망디 전투를 그리고 있는 데다가 양국 영화시장 규모와 인프라의 차이, 영화에 투입된 제작비 등을 감안했을 때 세월의 갭을 차치한 상황에서 충분히 비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강제규 감독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르망디 전투를 빗대어 '영화 속의 영화'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준비와 정성이 들어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CG를 이용한 표현의 웅장함은 물론 컷 하나하나에 담긴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은 <마이웨이>의 이미지를 보며 관객들은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마이웨이>는 김준식(장동건)과 타츠오(오다기리 죠)를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모두 세 번의 대규모 전투가 펼쳐진다. <마이웨이>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전투는 일본군과 몽골, 소련군의 '노몬한 전투'이고, 두 번째 전투는 독일과 소련의 혈전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전투로 알려진 '독소전'이다. 그리고 세 번째 전투는 5년 간 이어진 2차 세계대전의 클라이맥스이자 <마이웨이>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한 '노르망디 해전'이다. 마라토너였던 준식과 타츠오는 이 세 번의 전투를 겪으면서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다시 소련군에서 독일군으로 전향한다. 또한 적에서 동지로, 동지에서 친구로 관계를 맺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번의 전투를 소개한 이유는 이 세 번의 전투가 <마이웨이>의 기술적인 진보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양식일 뿐더러 내러티브를 보다 쉽게 정리하기 위한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규모 전투가 한번 끝나면 제법 긴 시간의 페이드아웃이 이어지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바스터즈>를 비롯한 타란티노 영화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 나가다 보니 찬양 일색의 리뷰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이 정도의 영화라면 이 정도의 찬양은 과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이웨이>는 예술적으로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상업영화임이 분명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마이웨이>가 이룬 기술적 진보는 아직 일차적 종결에 불과하다. 앞으로 한국영화는 예술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더욱 진보할 것이며, <마이웨이>의 기술적 진보를 통해 본 진정한 가치는 일차적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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