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도영화 <세 얼간이>를 보았다. <세 얼간이>는 인도 최고의 명문 공과대학을 배경으로 현 교육의 부조리와 그로 인한 병폐를 진단하고, 보다 나은 인생에 대한 고찰과 참된 교육의 의미를 유쾌하게 풀어 낸 영화이다. 인도영화 특유의 쾌활함이 전반적으로 잘 묻어나 있는 작품이지만 마냥 즐겁게 감상할 수만은 없었다. 영화는 이상과 낭만을 이야기하고 또, 적극적으로 어필하지만 그 이면에 버티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차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 이즈 웰! <세 얼간이>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가슴을 두드리며 '알 이즈 웰'이라 말한다. '모두 다 잘 될 거야(All is Well)'라는 의미의 주문이다. 영화의 이야기와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낙천적인 면모가 바로 이 주문에 모두 들어 있다. 주문을 외면 불안했던 마음이 릴렉스해지고,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일도 해결된다. 심지어 꺼져 가던 생명도 살아난다. 영화는 이렇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아울러 이러한 제안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염세적인 장면마저 불사한다.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하고, 기숙사에서 목을 매단다. 그러나 이것은 낙천과 염세의 대조가 아니다. 염세는 그저 낙천을 위한 충분조건에 불과하다.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상과 낭만을 쫓는 <세 얼간이>와는 달리 <죽은 시인의 사회>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현실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두 영화의 함의가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본 후 포스트잍에 '카르페 디엠'과 '알 이즈 웰'을 적어 붙이고 두 문장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두 문장의 공통된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번 지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현재에 충실하고 현실을 즐기는 일은 결국 이상과 낭만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세 얼간이>를 통해 참된 교육의 의미를 현 시대의 획일화된 교육 방식에 비추어 저울질해본다. 편협으로 물들었던 이상과 목표가 조금이나마 제 색깔을 되찾은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좋은 영화 한 편은 재미와 감동 뿐 아니라 교훈까지 선사한다. 특히 교육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들은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교감을 위한 매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굿 윌 헌팅>, <코치 카터>, <클래스>, <언 애듀케이션> 등 교육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소개할 세 편의 교육영화 또한 바로 그러한 영화들이다.
세 얼간이 (3 Idiots, 2009)
ⓒ Eros International / Reliance Big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발리우드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세 얼간이>가 네티즌들의 엄청난 입소문에 힘입어 최근 한국에 상륙했다. <아바타>를 제압한 인도 흥행수익 811억, 네이버 영화 평점 역대 1위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영화가 만들어진 지 2년 만에 극장 개봉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개봉 이후의 반응 역시 뜨겁다. 무엇보다 '재밌고 감동적인 영화'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대중성이 주효했다. <세 얼간이>는 여느 인도영화와 마찬가지로 러닝타임이 긴 편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유쾌한 코미디, 잔잔한 드라마, 가슴 설레는 로맨스, 호쾌한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믹스를 통해 영화의 흥을 살리고, 묵직한 메시지가 적절히 배합되면서 러닝타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여운을 남긴다.
<세 얼간이>를 연출한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은 얼간이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습이나 기준에 순응해야 하는 불평등한 압력에 용기 있게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낯설기 그지없지만 인도 최고의 흥행배우인 아미르 칸을 비롯해 마드하반, 셔먼 조쉬가 출연하여 감독이 정의하는 얼간이 캐릭터 셋을 완성한다. 그들은 인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찍어 낸 품질 좋은 공산품이 되길 거부한다. 규격화된 삶과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화된 잣대 역시 거부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두렵지 않아? 세 얼간이는 말한다. "알 이즈 웰!"
홀랜드 오퍼스 (Mr. Holland's Opus, 1995)
ⓒ Hollywood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세 얼간이>가 부조리한 교육 시스템에 반기를 든 학생들의 이야기라면 다음 소개할 두 작품은 교사가 중심이 되는 영화이다. 그중 첫 번째번째로 소개할 영화는 <홀랜드 오퍼스>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글렌 홀랜드(리차드 드레이퍼스)는 작곡가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던 중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고등학교 음악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보다 여유로울 것 같았던 교직 생활이 예상 밖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도 크게 변해가기 시작한다. 순도 100%의 뮤지션, 음악이 전부였던 한 남자가 교사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격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홀랜드 오퍼스>는 음악을 소재로 또,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에서 잭 블랙 주연의 코미디영화 <스쿨 오브 락>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교사가 중심이 된다는 점 또한 같다. 하물며 <홀랜드 오퍼스>는 주인공이 음악교사로 부임하는 순간부터 퇴임하는 순간까지의 전기를 담고 있다. 그렇게 한 남자의 30년 인생을 압축하여 보여준 리차드 드레이퍼스의 명연기는 영화 만큼이나 감동적이다. 미스터 홀랜드를 연기한 그는 제68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1989)
ⓒ Touchston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교육영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엄격한 교육 방식과 권위주의를 통해 명문으로 군림한 웰튼 고등학교에 모교 출신의 영어 교사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이 부임한다. 그는 기존 교육의 보수적인 틀을 깨는 파격적인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관의 다양성을 제시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역시 <세 얼간이>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제안을 보다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해 극단적인 내러티브를 서슴지 않는다. 학생의 권총 자살이라는 염세적인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개봉 당시 국내에서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군사정권의 억압과 핍박을 이겨 낸 관객들에게 웰튼 고등학교의 딱딱한 교육 방식은 분명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또한 '카르페 디엠', '캡틴 마이 캡틴' 등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들은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키팅 선생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의 인기도 아주 대단했다. 그는 탁월한 연기를 바탕으로 제62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2년 전 그랬던 것처럼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이게 벌써 21년 전 일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만들어진 지도 20년이 넘었다. 영화를 통해 로버트 숀 레너드와 에단 호크 등 지금은 중년이 된 스타들의 어린 시절 모습도 볼 수 있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영화의 감동은 전혀 녹슬지 않았고, 영화가 주는 교훈 역시 변함없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책상 서랍을 열어 포스트잍을 꺼낸다. 그리고 영화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이렇게 적어 붙인다.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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