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기차여행에는 추억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춘천가는 기차에 올랐을 때의 그 짜릿한 흥분과 설렘을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의 소박한 모습과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심심한 입을 달래던 기억 모두 기차여행이 주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 말을 하니까 왠지 나이가 좀 들어 보일 것도 같은데 참고로 나는 아직 젊다. 뭐 어쨌든...

기차여행에는 낭만도 있다. 하얀 피부와 긴 생머리를 가진 여학생의 미소가 좌석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은 어떻게 보면 조금 식상한 것 같아도 뭇 남성들로 하여금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이미지가 된다. 또한 <비포 선라이즈>나 <투어리스트> 등 기차 안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 남녀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그린 영화들은 기차여행이 주는 낭만을 떠올리게 한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캐나다 기차여행의 시작, 비아레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기차여행의 추억과 낭만이 잊혀질 때 즈음 저 멀리 캐나다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밴쿠버를 출발하여 사스카툰, 위니펙, 토론토를 거쳐 퀘벡까지 이어지는 캐나다 횡단여행이었다. 기차 안에서 보내게 될 시간만 90시간이 넘는 기나긴 여행이라 내심 두렵기도 했지만 든든한 동반자가 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악랄가츠와 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츠     :  사스카툰까지 얼마나 걸리죠?
레인맨  :  안 막히면 34시간이요.
가츠     :  그 날이 올까요?
레인맨  :  ......

미국에 앰트랙이 있다면 캐나다에는 비아레일이 있고, 유럽에 유레일패스가 있다면 캐나다에는 캔레일패스가 있다. 비아레일(Viarail)은 캐나다의 국영철도로 캐나다 전역을 19개 노선으로 운행하는 열차이다. 나는 캐나다 전역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21일 내에 7개구간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캔레일패스 시스템(Cnarailpass-System)을 이용했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기차여행의 매력이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인 캐나다를 여행하는데 철도 만한 교통 수단도 드문 듯 하다. 기차에 오르는 순간 편안한 의자에 앉아 기차에 몸을 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기차는 자동차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지만 장신간 운전을 하거나 지도를 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며, 비아레일 노선은 캐나다 전역에 뻗쳐 있기 때문에 왠만한 지역은 전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비행기에서는 볼 수 없는 캐나다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차의 장점이다. 물론 기차가 비행기에 비해 느리기는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답답하지도 않다. 기차에 오르는 순간 그저 창밖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거나 기차에 함께 탄 여행객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비아레일의 자랑, 파노라마 라운지!"

비아레일 기차의 중간 부분에는 스카이라인 차가 있다. 복층 구조로 된 스카이라인 차에는 360도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파노라마 라운지가 있어 캐나다의 독특한 풍경을 보다 높은 시야로 즐길 수 있다. 이번에 기차여행을 하면서 이곳 파노라마 라운지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레인맨  :  그나저나 가츠님, 담배 피고 싶지 않아요?
가츠     :  미치겠어요. ㅜㅜ

비아레일은 전 칸이 금연이다. 흡연을 하지 않는 승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되겠지만 애연가인 악랄가츠와 나는 담배를 태울 수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바로 그때 승무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무원  :  잠시 후 블루리버 역에 10분 동안 정차하겠습니다.
레인맨  :  야호!

악랄가츠와 나는 서둘러 담배부터 챙겼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아, 어지러워!"

몇 시간 만에 담배를 태웠더니 몸을 비틀거릴 정도로 어지러웠다. 비아레일은 여행을 하며 금연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솔루션인 것 같다. 금연을 생각하고 있는 흡연자가 있다면 비아레일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물론 중간중간 짧게나마 정차하는 역이 있어 담배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겠지만 비아레일이 금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츠     :  어지럽다면서 또 펴요?
레인맨  :  다음 정차역까지 7시간 남았어요. 미리미리 니코틴을 충전해 두어야지요.

악랄가츠는 이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기차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승객과 승무원 역시 모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거나 역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풍경과 여행 패턴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만큼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 된 것 같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기차는 밴쿠버를 떠난 다음 날 오후가 다 되어서야 재스퍼에 안착했다. 앨버타 주에 위치한 재스퍼는 아주 유명한 여행지이기 때문에 보통 1시간 30분 동안 정차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탄 기차는 기기 이상으로 캡룹스에서 20분 넘게 시간을 보냈고 재스퍼에 연착하게 되었다. 재스퍼에서의 정차 시간은 그만큼 짧아졌고, 나는 급한 마음에 기차에 오르기 전 줄담배를 피웠다. 줄담배를 피운 나는 담배에 취해 기차에 타자마자 두통을 호소했다.

"맑은 공기가 필요해!"

그러나 비아레일에는 뚫린 공간이 없었다. 하물며 창문도 열리지 않았다. 두통과 어지러움에 못 이긴 나는 결국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담배에 취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술에 취한 고통보다 훨씬 더하다. 고통을 잊기 위해 잠을 청했고, 기절에 가깝게 잠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디선가 한 남자의 기적같은 멘트가 들려왔다.

승무원  :  애드먼튼. 트웬티 미닛. 프레시 에어. 스트레칭.

잠시 후 애드먼튼에 도착, 20분 동안 정차하겠으니 기차에서 내려 맑은 공기도 마시고 스트레칭도 해라, 뭐 이런 내용의 안내 멘트였다. 그런데 승무원 아저씨는 유독 'Fresh Air'를 강조했다. 내가 담배에 취해 맑은 공기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프레시 에어 만큼은 정말 크게 말했다. 그것도 아주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자정을 넘긴 시각 앨버타의 주도인 애드먼턴에 도착했다. 신선하고 차가운 밤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기차가 완전히 멈추어 서자 그 누구보다 먼저 내린 승무원 아저씨는 땅을 밟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는 흡연자였다.

레인맨  :  프레시 에어 마시라고 하더니 자기는 담배 연기 마시고 있어.
가츠     :  ㅋㅋㅋㅋㅋㅋㅋ 우리도 한 대 태우죠.

악랄가츠의 제안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빨아들였다. 가뜩이나 캐나다에서 12불 13불씩 하는 담배, 앞으로는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피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다짐을 승무원 아저씨에게도 권하고 싶어졌다.

레인맨  :  저 아저씨 담배 너무 빨리 피는데?
가츠     :  게다가 벌써 5개째 줄담배임. ㄷㄷㄷ

20분이 지나자 기차는 에드먼턴을 뒤로한 채 다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니코틴 충전도 했겠다, 맑은 공기도 충분히 마셨겠다. 잠을 청하기 전 마지막으로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다. 

레인맨  :  화장실 다녀올게요.
가츠     :  아까 승무원 아저씨 급하게 들어가던데...

화장실 앞에 서서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안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술이 취한 사람이 자신이 먹은 안주를 확인할 때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꽤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우웩!"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밴쿠버 역 앞에서 찍은 사진. 비아레일을 타면 이렇게 가방을 하나 준다.
기차에 타기 전 먹을거리와 음료수 등을 사서 담아가기에 딱 좋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기차에 연료를 채우고 있는 모습.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간이역에서 대기 중인 직원들이 연료를 채우거나 식품을 조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비아레일 티켓을 펼쳐든 모습. 밴쿠버와 퀘벡 사이에 타고 내리는 역이 많아 티켓이 정말 많았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위니펙에서 토론토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재클린 피츠너.
위니펙에 살고 있다는 그녀는 기차여행 중 만난 낯선 동양남자 두 명을 살갑게 대해주었다.
나중에는 친해져서 선물까지 주고 받았다.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VIA Rail Canada, Canada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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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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