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여기가 어디?"

얼마 전 발행한 포스팅 '해외여행 중 영어를 몰라 밥을 굶은 사연'을 본 사람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이곳은 사스카툰에 있는 '서스캐처원대학교(University of Saskatchewan)'이다. 사스카툰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도시로 기억된다. 여행을 하면서 재미있는 해프닝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경찰에게 붙잡혀 간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는 서스캐처원대학교에서 시작된다.

끼니를 거른 Reignman과 악랄가츠는 학교 내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와 스콘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리고 장시간 걸은 탓에 피로가 쌓인 다리를 주무르며 피로를 풀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 지 10분 남짓 됐을까? 근처에서 한국말이 들려 왔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보니 한국인 세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레인맨  :  혹시 한국 분들이세요? 완전 방가!
한국인  :  여행 오셨어요? 그런데 왜 사스카툰에... 밴프는 다녀 오셨어요?

사스카툰에서 유학 중이라는 한국인 세 명은 Reignman에게 밴프에 가보라고 하였다. 뜬금없는 제안에 당황한 Reignman은 밴프 말고 사스카툰에서 가 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인 세 명은 캐나다 내에서도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히는 밴프와 여행지로서는 큰 매력이 없는 사스카툰을 비교하며 밴프라면 모를까 사스카툰에는 유명한 관광 명소가 없어 어딘가를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이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물관을 하나 추천해 주었다.

한국인  :  서부 개척 박물관이라고 전에 가 봤는데 나름 갠춘합니다. 한번 가 보세요.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내 학교는 내가 치운다!"

Reignman과 악랄가츠는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땅히 갈 데도 없어 박물관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캠퍼스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두 남자의 시야에 들어왔다. 두 남자는 촬영 허락도 받을 겸 해서 가장 허락을 잘 해줄 것 같아 보이는 백인 남성에게 접근했다. 착해 보이는 외모 그대로 사람됨 또한 매우 착한 백인 남성은 두 남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의 이름은 마이크이며 사스카츄완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방학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이렇게 쓰레기를 치우며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였다.

가츠     :  이 녀석들 장한데?
레인맨  :  그 말을 알아들은 가츠님이 더 장해요!

의기양양해진 악랄가츠의 눈빛이 크게 한번 번뜩였다. 악랄가츠는 그때부터 Reignman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푸드 어쩌고로 굴욕을 당한 Reignman은 악랄가츠의 리드에 순순히 응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악랄가츠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 이내 잽싸면서도 정확한 터치로 박물관의 위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츠  :  현재 시각 15시 30분, 박물관과의 거리 11.48km, 이동시간 45분 내외, 박물관은 5시에 문을 닫으니까 서둘러 버스를 타야 해요!

(아이폰을 보유한) 그는 천재였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2.75$입니다."

마이크와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을 소비한 Reignman과 악랄가츠는 급하게 버스에 올라 탔다. 그런데 이거 웬일, 버스 요금통에 'Coins Only'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지폐로 계산을 하려 했던 두 남자는 당황하여 동전을 세기 시작했다. 캐나다여행을 시작한 지 5일째에 접어들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외국 동전을 계산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캐나다 동전은 센트와 달러가 섞여 있고, 50센트(거의 없음) 대신 25센트를 사용하며, 10센트 동전이 5센트 동전보다 크기가 작아 계산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손바닥의 동전을 계산하고 있는 두 사람의 동양인 때문에 버스는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운전사와 승객들의 표정은 여유로웠으나 두 남자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급기야 계산을 포기한 Reignman은 버스 기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버스 기사는 2.75$ 만큼의 동전을 직접 골라 주었다.

한편 악랄가츠는 동전이 모자랐다. Reignman의 남은 동전을 더해 보았지만 2.75$이 되지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 본 버스 기사는 가진 동전만 넣고 타도 된다며 버스 티켓을 끊어 주었다. 버스 기사의 친절함에 감동한 두 남자는 약소한 보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Tip. 사스카툰의 시내버스 요금은 2.75$이다. 서울에 비하면 다소 비싼 편이지만 1시간 30분 이내에는 무료 환승이 되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이용하기에 가장 편리하고 경제적인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참고로 캐나다의 시내버스는 주와 도시별로 요금과 환승시간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요금은 평균 2.75$이며 환승시간은 1시간에서 3시간까지 다양하다. 환승을 하기 위해서는 운전사에게 종이로 된 버스 티켓을 보여 주어야 하므로 버리지 말고 꼭 챙겨 두어야 한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Kind, Thank, Gift"

준비된 남자 Reignman은 여행 중 친절한 사람을 만났을 때 작은 보답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선물을 챙겨 갔다. 한국을 나타내는 엽서, 손수건, 스카프, 열쇠고리, 핸드폰줄, 배지, 목걸이 등 선물의 종류도 다양했다.

레인맨  :  이거 제주도에서 구한 열쇠고리인데 선물로 줄까요?
가츠     :  자동차 열쇠고리네요. 버스 기사에게 딱 좋은 선물이네요!

환승을 하기 위해 다운타운에서 하차한 두 남자는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운전석으로 향했다. 당신은 매우 친절한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이건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두 남자는 미리 준비한 멘트와 함께 선물을 전해 주었다. 버스 기사는 환한 미소로 화답했고, 사진을 찍는 두 남자에게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버스가 떠나자 두 남자는 갈아 탈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심상치 않은 포스의 백인 남성이 두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검은 옷에 검은 신발, 검은 선글라스, 검은 시계, 검은 무전기를 착용한 근육질의 백형이었다.

가츠     :  이 형 뭘까요? 경찰인가?
레인맨  :  경찰은 경찰인데 손에 저 컵은 뭐지? 낮술인가?

잔뜩 긴장한 두 남자에게 다가간 경찰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은 이유를 캐묻기 시작했다. 경찰의 굵고 낮은 목소리에 긴장감이 더해진 두 남자는 친절한 버스 기사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위급한 상황에 닥친 두 남자는 캐나다 이민 3년차 수준의 영어 실력을 선보였다. 경찰은 대충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권위와 위엄이 느껴지는 말투로 충고를 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레인맨  :  boys? 우리가 boy야?
가츠     :  우리보다 어려 보이는데 혹시라도 다음에 만나면 강하게 나가죠!

두 남자는 굳게 다짐했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최고의 서비스!"

갈아 탈 버스가 좀처럼 오지 않자 Reignman과 악랄가츠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까 마셨던 커피의 이뇨 작용이 활성화되어 화장실도 급한 상황이었다. 두 남자는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한 서비스 센터에 들어갔다. 화장실의 위치와 버스 시간을 묻기 위함이었다. 엉성한 두 명의 동양인과 맞닥뜨린 센터의 여직원은 상냥한 말투로 버스 시간과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특히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 줄 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하였다. 두 남자는 서비스 센터의 친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심상치 않은 포스의 백인 남성이 두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아까 그 경찰이었다.

레인맨  :  쟤 뭐야~ 왜 또 오지?
가츠     :  강하게 나가죠!

아까보다 더욱 강력한 포스를 내뿜으며 등장한 경찰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더니 찻길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무단횡단에 주위 차들은 일제히 멈추어 섰다.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두 남자는 강하게 나가자던 다짐을 뒤로하고 경찰의 뒤에 바싹 붙어 다소곳하게 길을 건넜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경찰의 동료와 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레인맨  :  Security? 경찰 아니고 보안 요원이었네.
가츠     :  그러네요. 근데 우리를 왜 데려왔을까?

그렇다. 그는 경찰이 아니라 보안 요원이었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사스카툰의 안전을 위하여!"

이 사람들이 바로 Reignman과 악랄가츠를 데려간 보안 요원들이다. 무리의 보스인 백인 아저씨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두 남자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버스와 서비스 센터 사진을 찍은 이유를 캐물었다. 두 남자는 가지고 있던 일정표와 관관청의 공문서까지 보여 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표정의 보스 아저씨는 대충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맨  :  가츠님 영어가 아주 술술 나오는데요?
가츠     :  ㅋㅋ 형도 만만치 않아요!

두 남자는 어렵사리 종료된 상황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뜰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 아저씨는 두 남자를 다시 불러 세웠다. 그리고 난데없이 자신의 명함을 불쑥 내밀었다.

Boss  :  사진 좀 찍어 줘. 찍은 사진은 메일로 쏴 주고.

순간 당황한 두 남자는 일단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위에 보이는 사진이다. 보스 아저씨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더니 다시 한번 찍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보스 아저씨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자세를 바로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바로 아래에 있는 사진이다. 부하들의 자세가 완전 공손해졌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결론은 사진이었어?"

Reignman과 악랄가츠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별 탈 없이 끝나게 되어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두 남자는 보란 듯이 담배를 꺼내 물고 방금 전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남자의 짧은 대화 속에서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레인맨  :  그러니까 뭐야. 결론은 사진이야?
가츠     :  카메라가 크고 좋아 보이니까 사진 한번 찍고 싶었던 걸까요?

과대망상이 특기인 악랄가츠는 낯선 동양인이 관광지도 아닌 곳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폭발물 테러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끌려간 것이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Reignman은 악랄가츠의 말도 안되는 추측을 무시했고, 두 남자는 결국 이번 사건의 최후를 '사진'으로 정리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두 남자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긴장도 됐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웃음이 터지는 그런 재미있는 사건이었다.

레인맨  :  화장실이나 가죠. 긴장이 풀리니 쌀 것 같아요.
가츠     :  가시죠. 서부 개척 박물관은 문 닫았겠네요. ㅜㅜ

후련한 기분으로 후련하게 볼일을 본 두 남자는 박물관에 가려고 했던 계획을 쿨하게 접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하여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가벼운 몸과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남자는 공립 도서관 및 시청 등을 돌아보며 다운타운 관광을 시작했다. Reignman이 촬영한 사진을 몇 장 공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이야기, 끝!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사스카툰 시내에 위치한 공립 도서관. 어느덧 땅거미가 뉘엿뉘엿 깔리기 시작한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도서관 내부의 모습.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사스카툰 시청의 전경. 도시의 분위기 만큼이나 시청 역시 소박해 보인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시청 뒤쪽에 자리잡은 광장.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탑을 볼 수 있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시청 건너편에 위치한 건물. 영안실로 보인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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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시청 옆에 위치한 교회. 고풍스러운 외관이 인상적이다.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다운타운 골목에 그려져 있는 그래피티. 매우 우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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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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