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울창한 숲과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있는 신비의 섬 금오도. 금오도의 바다와 일주도로는 사시사철 감성돔 낚시터로 또,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주목받으며 강태공과 라이더를 유혹하고 있다. 무엇보다 함구미 마을 뒷산에서 해안선을 따라 8.5km 구간에 조성된 올레길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명품 코스로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벼랑 위로 아슬아슬하게 나 있는 그 길의 이름은 바로...

"금오도 비렁길!"

비렁은 벼랑을 뜻하는 방언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벼랑 위를 걸으며 금오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이기 때문에 비렁길이라 부른다. 벼랑을 타고 걷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다 보면 누구나 완주할 수 있는 코스가 된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수 금오도 2011, ⓒ Reignman

여수 금오도 2011, ⓒ Reignman


"금오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수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를 탄 지 20분,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하였다. 보통 이 타이밍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등장하며 반겨주는 것이 상례인데 아가씨 대신 폭우를 동반한 먹구름이 최선을 다해서 반겨 주니 기분이 묘했다. 그래,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아리따운 아가씨가 주는 상큼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지만 낡은 어선들과 짭쪼름한 바다냄새가 주는 정취도 나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취는 결국 나로 하여금 솔로임을 한탄하게 하는 촉매제가 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정취는 커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Tip. 금오도행 배는 여수항과 신기항에서 탈 수 있다. 여수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비렁길과 가까운 함구미항에 도착하지만 1시간 이상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반면 돌산 신기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여천항으로 가기 때문에 비렁길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시 차를 타고 함구미마을로 이동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여수 금오도 2011, ⓒ Reignman

여수 금오도 2011, ⓒ Reignman


"이거 봐, 이거 봐!"

자전거도, 고양이도 모두 커플이자나. 가뜩이나 마음이 상해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빗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카메라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도 살아 남은 용사이긴 하지만 소금기가 있는 바닷가의 빗물은 또 만만치 않은 복병이기 때문이다.

우비를 찢어 카메라와 렌즈를 감싸기 시작했다. 비에 젖어 감기에 걸려도 따뜻하게 보살펴 줄 애인이 없는 나보다 카메라를 보호하는 일이 우선이니까. 그렇게 가엾고 쓸쓸한 출사가 시작되었다. 쓸쓸한 날씨 속에서 쓸쓸한 마음으로 담은 쓸쓸한 결과물을 몇 장 공개한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금오도 함구미마을의 소박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비렁길로 향하는 길. 비에 젖은 흙길을 걷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비렁길 중턱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쾌속선 한 대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너희들은 비를 맞아서 아주 시원하겠구나. 나도 뭐 시원하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 더 지치곤 해... 딱 지금의 내 심정이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궂은 날씨에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섬 어르신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궂은 날씨에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섬 어르신들. (2)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샤킹핑크 색상의 신발이 인상적인 섬 할머니의 뒷모습.


여수 금오도 상록수 식당 2011, ⓒ Reignman

여행의 또 다른 재미, 맛기행.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김복남 살인 사건의 장소!"

금오도 비렁길의 소소한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쓸쓸한 날씨도, 쓸쓸한 마음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그리고 미역바위의 멋진 자태가 드러났다. 예전에 미역을 널었다 하여 미역바위라고 불리는 이곳은 영화 <혈의 누>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등이 촬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사실 금오도는 나에게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촬영지로 더욱 익숙한 섬이다. 영화의 대부분이 금오도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졌고,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인 절벽 추락신이 바로 이 미역바위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전망대에 올라 미역바위를 내려다보며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려 본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 중 하나이기에 금오도와 미역바위의 풍경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주인공 김복남(서영희)은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순박하고 또 순박한 인물이다. 남편과 시동생은 물론 섬에 살고 있는 주민 모두에게 인간 이하의 대잡을 받고 살면서도 딸 하나 때문에 모든 설움과 고통을 참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해를 당하고 복남의 미치도록 잔혹한 핏빛 복수가 시작된다.

 "넌 너무 불친절혀!"

김복남의 대사를 떠올리며 미역바위를 벗어났다. 자욱하게 깔린 운무가 음침한 분위기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 덕분에 영화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영화 속의 금오도는 핏빛으로 물들었지만 실제 금오도의 분위기는 지극히 평화롭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금오도 비렁길을 걸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떠올리는 일, 이거 참 매력적이다.

About Movie. 김기덕의 수제자인 장철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과 카타르시스를 대변하는 수작 중의 수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영희의 호연이 돋보인 작품!

영화리뷰 ☞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 위선자는 가라


여수 금오도 비렁길 2011, ⓒ Reignman




    본 블로그는 모든 컨텐츠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출처를 밝히더라도 스크랩 및 불펌은 절대 허용하지 않으며, 오직 링크만 허용합니다.
    또한 포스트에 인용된 이미지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권리가 있으므로 이미지를 사용할 경우 저작권 표시를 명확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를 이야기하는 블로그 '세상을 지배하다'를 구독해 보세요 =)
    양질의 컨텐츠를 100% 무료로 구독할 수 있습니다 ▶ RSS 쉽게 구독하는 방법 (클릭)
 


BLOG main image
세상을 지배하다
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by Reignman

카테고리

전체보기 (875)
영화 (273)
사진 (109)
여행 (219)
그외 (273)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