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김기덕의 유파

제63회 칸영화제 공식초청작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3개 부문을 수상하며 평단의 호평 세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장철수 감독은 <해안선>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의 조감독 출신으로 김기덕 감독의 제자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제자라고 볼 수 있는 <의형제> 의 장훈 감독이 작가주의 일색인 스승의 연출 패턴을 버리고 상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장르영화를 선보였다면 장철수 감독은 스승의 장점을 십분 받아들이고 다듬을 것은 다듬어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통해 자신의 색깔과 역량을 가열하게 발산하고 있다. 장훈은 장훈대로 장철수는 장철수대로 '자기 영역 구축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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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여성은 항상 약자의 입장에 있다. 필자가 그러한 영향을 받은 탓일까. 이 영화의 주인공 김복남(서영희)이 남편에게 매를 맞고, 시동생에게 겁탈을 당하는 것을 보며 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라는 제목을 되뇌며 '아, 김복남이 곧 죽겠군'이라는 몹쓸 생각을 했다. 포스터에 박혀 있는 '복수'라는 단어도 보지 못하고 영화를 관람했으니 김복남이 피해자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거 웬걸, 그녀의 미치도록 잔혹한 핏빛 복수가 시작된다.

위선자들은 저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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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관찰자 역을 맡고 있는 해원(지성원)이 작은 사건을 겪게 되고, 그렇게 영화가 시작된다. 관객들은 영화 초반 은행과 경찰서에서의 시퀀스를 통해 해원이란 인물의 성향과 훗날에 있을 사건의 암시를 파악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해원은 타협에 약하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인물인 동시에 이기적인 인물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만들어 낸 성향일런지도 모르겠다. 반면 복남(서영희)은 답답할 정도로 순박하고 또 순박한 인물이다. 남편과 시동생을 포함하여 섬에 살고 있는 주민 모두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는 복남을 보고 있노라면 내 안의 악마근성이 꿈틀거림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남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의 중심에는 딸이라는 존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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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 있었기에 버텼건만 딸로 인해 악녀가 되는 김복남. 바로 이 부분에서 앞서 말한 해원의 성향과 사건의 암시가 적용된다. 해원이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았더라면 사건의 전말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김복남의 미치도록 잔혹한 핏빛 복수가 시작되고, 배우 서영희의 아름다운 호연이 펼쳐진다. 영화 <추격자>에서 관객들의 절대적인 응원을 받았던 그녀가 다시 한번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되는 순간이다. 두 영화를 모두 본 관객에게는 대단히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추격자>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극중 인물 미진이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반면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복남의 복수에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강력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보다 강하고 잔혹하게 죽여라. 그들에게 연민 따위는 사치다. 절대 약해지지 말아라. 죽여라. 또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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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런 영화를 보면서 '이거 너무 잔인하고 무섭다, 마음 약한 사람은 절대 보지마라'라며 위선을 떨 사람이 또 나올까 두렵다. 김복남은 가상의 인물이고, 이것은 현실이 아닌 영화이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정신과 전문의와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다. 위선자들은 저리가라. 제발 저리가라.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이라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만약 이 영화가 현실이라면 그래도 나는 김복남을 지지한다.

악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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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몬스터> 이후 오랜만에 여성 캐릭터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같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는 <악마를 보았다>에서 접했던 모든 장르가 들어있으다.  슬래셔, 고어, 에로티시즘, 서스펜스 등 자극적이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장르적 요소가 아주 풍부하다. 또한 복수와 살인 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들의 복수와 폭력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며 내 안의 악마 근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비슷하다.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걸작을 한달 사이에 두 편이나 감상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고 또 고맙게 생각한다.

엔딩의 주는 여운에서도 유사성을 느낀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음악이 음성을 대신하며 잔잔하면서도 진득하게 여운을 선사했다면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는 잔잔한 어쿠스틱기타 연주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상은 또 얼마나 뽀샤시한지 방금 스릴러 영화를 본 것인지 가족영화를 본 것인지 헷갈릴 정도의 동화같은 이미지로 마무리를 가져간다. 장철수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를 혼자 해석해본다. 여기까지가 영화이고 이제 곧 현실이 된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이 동화같은 엔딩을 보며 지금까지의 잔혹한 사건과 장면은 모두 잊어라. 위선자여. 영화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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