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잔혹함의 극치

김지운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제한상영가 등급을 판정받은 <악마를 보았다>는 문제가 되는 장면을 삭제, 잔혹함의 수위를 낮추고 3차 심의를 통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삭제된 장면은 알 수 없으나 편집된 <악마를 보았다>는 여전히 자극적이고 또, 충분히 잔혹하다. 평소 고어영화를 즐기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이 영화가 대단히 잔인하다고 느껴진다. 최근 개봉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아저씨>나 패륜성을 지닌 막장영화 <용서는 없다> 의 자극성도 <악마를 보았다>에는 명함도 못내밀 것 같다. 사실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느껴지는 잔혹함의 수위는 일차원적인 얼개일 뿐이다. 이 영화가 지닌 잔혹함의 진가는 영화 관람 후 온몸에 퍼지는 전율과 여운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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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의 기가막힌 템포를 느낄 수 있다. 실험정신이 돋보였던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을 필두로 한 그의 작품 세계는 대중성을 겸비한 코믹드라마 <반칙왕>으로 이어진다. <장화, 홍련>을 통해 한국 공포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음은 물론, <달콤한 인생>으로 느와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서부 액션극 <놈놈놈>을 통해 오락영화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준 바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언제나 신선한 감각을 보여준 김지운 감독은 대중성과 작품성의 가중치를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그러나 <악마를 보았다>가 저울질의 완성이라고 보진 않는다. 이번 영화는 일차적인 묘사만 가지고도 많은 관객들이 등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분명 흥행 이상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왜냐... 이 영화도 그의 또다른 도전에 불과할 테니까. 그는 현재 최고의 감독 중 한 사람이지만 조만간 최고가 될 것이다.

ⓒ 페퍼민트앤컴퍼니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All rights reserved.

이병헌과 최민식, 광기의 대결

<악마를 보았다>는 스릴러 영화의 걸작이다. <추격자>와 <살인의 추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144분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서스펜스를 유지하다 마지막에 이르러 잔잔하면서도 진득하게 폭발시키는 매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폭발이 잔잔하게 느껴진 것은 마지막 시퀀스에서 음악이 음성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긴 시간동안 막대한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병헌과 최민식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의 공로가 가장 크다고 본다. 긴 시간을 가감없이 꽉 채우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김지운 감독의 탁월한 미장센이 두 배우의 연기를 보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병헌과 최민식이 보여주는 악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물론 두 배우의 넘치는 관록에 조화라는 옷을 입힌 사람은 김지운 감독이며, 그의 조율과 서포트가 없었다면 조화 앞에 부(不)가 붙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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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마 경철(최민식)은 국정원 요원 수현(이병헌)에 비해 다채로운 표현력이 요구되는 인물이다. 반면 수현은 경철에 비해 공명한 절제력이 요구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지만 복수의 방법과 타당성에는 차이를 보인다. 한 사람은 차갑고, 한 사람은 뜨겁다. 그래서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 대결을 감상하는 것, 수현과 경철이라는 두마리 악마의 대립 구조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이는 마치 화산과 빙산의 충돌처럼 예측 불가능한 대결이 될 것이다. 둘 중에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지, 아니면 둘 다 승자이고 패자인지, 그것도 아니면 무승부인지는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필자는 이병헌과 최민식 모두 승자라고 생각하며, 수현과 경철은 둘 다 패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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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근성을 느끼다

범죄 스릴러 영화는 크게 패를 까는 영화와 패를 숨기는 영화,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악마를 보았다>는 패를 까는 영화의 범주에 속한다. 프롤로그 영상에서 경철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정원 요원 수현의 복수를 암시한다. 패를 숨겨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작부터 두 남자의 대립 구조를 만들어 복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자신의 악마 근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감정이입의 대상이 경철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악마 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 그리고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악마 근성의 정도가 심하고, 감정을 느끼는 데 미숙함을 보인다면 그게 바로 '사이코패스' 일테니까. 반면에 감정이입의 대상이 수현이 된다라고 한다면 자신의 악마 근성을 오히려 더 잘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의 경우 수현이 경철에게 복수를 함에 있어서 보다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접근하길 바랐다. 그것도 간절히 바라고 원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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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 곰곰히 생각해보자. 영화 속에서 악마를 본 것인지 내 안의 악마를 본 것인지...

(스포일러) 수현은 경철 못지않은 악마 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통을 줄 뿐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택한 마지막 결단은 경철의 가족이다. 노부모와 어린 아들에게 경철의 머리를 선물한다. 그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고 심신이 약한 노부모는 쇼크로 사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아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겠지. 차원이 다른 선택이자 지독하게 차갑고 잔인한 복수다. 그렇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여운이 시작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음악이 음성을 대신한다. 절규하는 수현의 모습을 그림으로만 볼 수 있기에 그 여운이 잔잔하면서도 진득하게 폭발한다. 수현의 절규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허탈과 상실감,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 후회와 미련, 분노... 그리고 자신의 악마 근성을 깨닫게 되면서 느껴지는 두려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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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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