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영화가 아닌 가족영화
덴마크의 동명 영화가 짐 쉐리단 감독의 손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브라더스>. 제목만 봐서는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일 것 같은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형제간의 우애 혹은 갈등이 주가 되기 보다는 가족 구성원간의 사랑과 갈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보니 '브라더스'라는 영화의 제목이 다소 무색해지고 있다.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고, 원작을 보진 못했지만 '패밀리'가 아닌 '브라더스'란 제목에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다. 무엇보다 동생으로 등장하는 토미(제이크 질렌할)의 존재감이 약하다. 형제라는 제목의 상징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 존재감은 더욱 미미해진다. 오히려 샘(토비 맥과이어)의 맏딸인 이사벨의 존재감이 더 부각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 짐 쉐리단이 의도한 바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웃음과 눈물과 감동과 긴장을 자유자재로 선사하는 짐 쉐리단의 리드미컬한 연출의 변주에서 관객을 휘어잡는 마력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미미한 결말의 존재감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 구조의 완성도를 좀먹는 요소로 작용되고 있다. 제목을 걸고 넘어지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형제간의 우애와 갈등이 전달하는 공감대가 그만큼 미약하다는 것이고, 이는 결말의 미약함과 맥락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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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이나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도 보여주었던 짐 쉐리단의 가족에 대한 통찰은 <브라더스>에서 역시 빛을 발한다. 그에 상응하는 배우들의 호연 역시 빛을 발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다. 앞서 말한 맏딸 이사벨의 두드러지는 존재감은 베일리 매디슨이라는 아역배우의 실감나는 연기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나탈리 포트만과 제이크 질렌할은 물론이고, 심지어 단역으로 잠깐 등장하는 <언 애듀케이션>의 캐리 멀리건까지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물론 토비 맥과이어의 연기력은 그중에서도 단연 발군이다. 우선 샘이라는 캐릭터의 난이도가 워낙 높다. 전쟁으로 인한 육체적인 피폐와 정신적인 피폐, 그로 인한 자학과 폭력성을 표현해내야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호리호리한 토비 맥과이어는 10kg이나 체중을 감량하며 샘이 받은 육체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약과, 정작 소름이 돋는 것은 그의 내면 연기다. 극한의 상황을 겪은 이후의 샘은 비교적 좁은 범위의 표정을 유지하지만 그 싸늘한 표정과 차가운 시선에서 심리적인 불안과 정신적인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비록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등장하지 않지만 토비 맥과이어가 그의 빈자리를 충실히 메우고 있다. '제2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란 수식어가 별로 아깝지 않아 보인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통해 스타성을 인정받은 토비 맥과이어, 워낙 대작이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짐 쉐리단이라는 거장을 만나 스파이더 맨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진정한 연기파 배우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오스카는 <허트 로커>의 제레미 레너가 아닌 <브라더스>의 토비 맥과이어를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했어야 했다.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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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되면서부터 형과 아우의 이질적인 운명을 저울질하기 위한 교차 편집이 진행된다.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짐 쉐리단의 리드미컬한 연출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형의 죽음이 동생의 행복을 만들어 주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과정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 과정은 영화 <진주만>에서 조쉬 하트넷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겪는 불륜에 가까운 상황이 아니라 진정한 가족으로서의 귀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브라더스>의 절정을 이루는 장면이 등장한다. 샘이 부엌에서 난동을 부리는 신인데 토비 맥과이어 연기의 절정이기도 하다. 샘의 자학과 폭력성,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불안은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와 동생 토미는 물론 보는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영화의 결말이 주는 감흥은 상대적으로 무미하고 미약하다. 샘의 건조한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 만큼이나 잔잔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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