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감미로운 음악과 서정적인 분위기

한때는 잘 나갔지만 수 차례 결혼 실패와 알콜 중독 등의 이유로 위기에 빠진 컨트리 가수의 재기를 그린 영화 <크레이지 하트>. 이 영화는 그 무엇보다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좋은 작품이다. 제프 브리지스와 매기 질렌할, 콜린 파렐, 로버트 듀발의 좋은 연기를 감상할 수 있으며, T 본 버넷이 들려주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워지는 작품이다. T. 본 버넷은 그래미상 수상에 빛나는 작곡가겸 영화음악 감독인데 이 영화의 삽입곡인 'The Weary Kind'로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을 수상했으며, 며칠 후에 있을 오스카 주제가상(결국 수상)까지 노리고 있다. 전설적인 뮤지션 조니 캐쉬의 생애를 그린 영화 <앙코르>(역시 T-본 버넷이 음악을 담당)나 레이 찰스의 전기 영화인 <레이> 등의 영화를 봤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의 눈과 귀는 이 영화로 인해 깔끔하게 정화될 것이다.

이 영화는 역시나 구수한 컨트리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는 이곳 저곳의 마을을 떠돌아 다니며 공연을 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로드무비가 되고 있으며 컨트리 음악이 더해지면서 그의 여행길은 더욱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배드 블레이크가 그의 오랜 친구인 웨인(로버트 듀발)과 경치 좋은 호수위에 배를 띄워 놓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낚시를 즐기는 장면 역시 아름답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한 스콧 쿠퍼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봤는데 <크레이지 하트>가 그의 첫 연출작이고, 그는 감독이 아닌 배우였다. 오랜 배우 생활로 쌓은 연출 노하우를 이번 영화에서 십분 발휘한 것 같다.

THE HARDER THE LIFE, THE SWEETER THE SONG.

ⓒ Butcher's Run Films / Informant Media. All rights reserved.

배드(Bad) 블레이크

<크레이지 하트>의 주인공인 배드 블레이크는 Bad라는 이름처럼 다소 까칠하고 마초적인 느낌의 나쁜 남자 스타일이다. 담배에 불을 붙일 때는 항상 자기가 피우던 담배로 불을 붙이고(조훈현급 줄담배), 알콜 중독자답게 술병을 항상 달고 산다. 심지어 잠을 잘때도 술병을 안고 잔다. 그는 주로 작은 마을을 돌며 볼링장이나 주점같은 곳에서 공연을 하는데, 공연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매니저에게 전화로 욕설을 퍼부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배드 블레이크는 까칠한 성격에다가 항상 술에 절어 살고는 있지만 절대 폭력적이거나 범죄를 저지를만한 위인은 못된다. 왜냐하면 그는 서정적인 컨트리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노래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귀에서부터 시작하여 심장까지 전해지며 진동하는 정서의 울림은 배드 블레이크에게 푹 빠져들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배드 블레이크에게 미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제프 브리지스의 깊이 있는 연기다. 제프 브리지스는 자신의 연기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제프 브리지스는 결국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5번의 도전만에 이룬 쾌거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아주 강한 임팩트는 없었으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연기는 제프 브리지스의 관록과 연륜을 느끼게 해주었고, 배드 블레이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을 고난과 아픔을 느끼게 해주었다.

ⓒ Butcher's Run Films / Informant Media. All rights reserved.

가혹한 삶

배드 블레이크의 인생은 가혹하다. 그는 알콜 중독을 극복하고 갱생을 위해 노력한다. 자신을 취재하러 온 젊은 여기자와의 사랑이 재기를 위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앙코르>나 <레이> 역시 마약 중독을 이겨낸 뮤지션들의 갱생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는 미키 루크의 <더 레슬러>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영화들에는 사랑이야기 또한 담겨져 있다. <더 레슬러>의 랜디 '더 램' (미키 루크)과 배드 블레이크는 각각 프로 레슬러와  뮤지션으로 직업은 다르지만 왕년에 잘나갔던 스타들의 재기를 그리고 있는 내용적인 측면도 그렇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영화음악이 주는 고독함마저 비슷한데, <더 레슬러>의 삽입곡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Wrestler'나 건스 앤 로지스의 'Sweet Child o' Mine'은 <크레이지 하트>의 삽입곡인 라이언 빙햄의 'The Weary Kind'와 장르는 다르지만 음악이 주는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각의 음악에는 영화 속 인물들의 삶과 고독함이 담겨져 있다. <앙코르>나 <레이>역시 마찬가지, 배우들의 위대한 연기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훌륭한 영화 음악을 감상하는 맛도 아주 좋을 것이다. 현재 <크레이지 하트>의 상영관은 전국에 3개정도 있는 것 같다. 작년에 <더 레슬러>가 그랬던 것 처럼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이는 관객들의 수준과는 별개의 문제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폐단 (불법 다운 양산), 그리고 한국 영화시장과 국내 배급사들의 고질적인 편협성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가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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