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캐나다여행 열흘 째가 되던 날 토론토에 도착했다. CN타워와 포트요크 등을 둘러보며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낸 뒤 본격적으로 토론토 구경에 나서려던 찰나 갑자기 온몸 구석구석이 간지러웠다. 위니펙에서 40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오는 바람에 그동안 샤워를 하지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한 탓이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떡진 머리와 푸석푸석한 피부, 거기에 츄리닝 바지와 쪼리 패션까지... 이대로 토론토의 번화가에 나서는 것은 무리수였다.

레인맨  :  선생님, 중간점검 한번 해야겠는데요. ㅜㅜ
임부장  :  그럽시다. 내가 봐도 인맨군 꼴이 말이 아니야.

온타리오 주에서 가이드를 맡아 주신 임영선 부장은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욕실로 직행, 묵은 때를 벗기고 머리를 세 번 감았다. 사실 하버프론트에서 크루즈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씻었어야 했지만 감아도 감아도 기름기가 사라지지 않는 머리 때문에 많은 시간을 잡아 먹었다. 참고로 머리를 처음 감았을 때에는 기름때문에 거품도 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쓰고 있던 모자도 빨고 싶었지만 향수를 한 방울 떨어트리는 것으로 갈음했다.

"아, 더럽게 진짜!"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오, 여기 분위기 좋은데!"

호텔을 나와 토론토 하버프론트에 도착했다. 하버프론트는 토론토 남쪽의 온타리오 호반을 재개발한 지역이다. 항구다운 풍경 속에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 다양한 기념품샵들이 밀집되어 있고, 극장과 화랑은 물론 고층의 고급 콘도미니엄까지 들어서 있어서 시청과 이튼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토론토 시내와 차별화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과 가족, 커플 단위의 나들이 인파로 하버프론트는 언제나 북적거린다.

레인맨  :  선생님, 드레스코드는 포멀인가요?
임부장  :  하하, 그런 거 없습니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본다면 크루즈를 여러 번(캐나다에서 크루즈만 3번 탐;;) 타 보았지만 당시에는 크루즈를 두 번째 타는 거라 혹시 몰라 의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보다 강력한 샤워를 통해 말끔한 남자로 거듭난 나는 체크셔츠와 녹색 9부 바지를 입고 빨간색 탐스슈즈를 신어 컬러풀한 남자로 변신을 꾀했다.

가츠     :  바지, 이건 좀 아닌 듯... 길이도 어정쩡하네요.
레인맨  :  조인성이 입으면 8부인데 내가 입으니 10부 바지가 되네요. ㅜㅜ

나름 멋 부리려고 챙겨 간 녹색 바지는 그날 이후 자신감을 상실, 트렁크에만 고이 모셔 둘 수 밖에 없었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호숫가 근처에 자리 잡은 고급 콘도미니엄.
하버프론트의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통해 캐나다의 새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여유롭게 헤엄치는 오리가 있는가 하면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이렇게 비행기도 날아다닌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호숫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토론토의 랜드마크인 CN타워도 보인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탑승 시작합니다!"

하버프론트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탑승이 시작됐다는 직원의 외침을 듣고 배에 올랐다. 유람선에는 확실히 관광객들이 많았다. 결혼식을 끝내고 피로연을 즐기기 위한 단체 관광객도 있었고, 주말을 이용하여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려는 커플도 많았다. 하지만 캐나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레인맨  :  저기 저 빨간 구두 아가씨 예쁜데요?
가츠     :  바로 뒤에 남친님 계시고요.
레인맨  :  웁스...

크루즈투어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저녁식사가 포함된 투어였기 때문에 일단 배에 타자마자 밥을 먹었다. 저녁식사는 뷔페로 제공되기 때문에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음식 맛은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좀 느끼한 편이라 평소에 먹던 양보다 적게 먹었다. 밥이야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나머지 2시간은 과일과 아이스크림, 커피, 와인 등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토론토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짧지 않은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투어 시간이 좀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하고 바깥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슬슬 지루해질 타이밍에 밴드 공연과 댄스타임 등의 이벤트가 진행되기 때문에 나름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모든 승객이 안전하게 배에 타고 있는지 확인하는 승무원.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크루즈에서 먹은 음식. 맛은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좀 느끼한 편이라 한 접시밖에 못 먹었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염소 고기를 썰어주던 요리사.
이메일을 알려 주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보챘다.
깜빡하고 아직 안 보내 주었는데 조만간 3년 안에 보내줄 예정이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사진 찍어 드립니다!"

유람선은 커플들로 넘쳐 났다. 저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이며 또, 보는 솔로 짜증나게 하는 스킨십을 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사실 짜증은 아주 약간밖에 나지 않았다. 커플들의 다정한 모습은 너무나도 보기 좋았고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하물며 더 이상 찍을 만한 피사체도 찾을 수 없었다.

하버프론트의 크루즈투어는 배가 계속 움직이는 투어가 아니다. 토론토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리 만큼 이동했다가 호수 중간에서 2시간 정도 그냥 서 있는다. 처음에는 토론토의 스카이라인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는다. 하지만 각도의 변화도 없고 같은 사진을 계속해서 찍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반대쪽은 뭐 없냐고? 그냥 호수다. 아무것도 없다. 결국 새로운 피사체는 배 안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레인맨  :  두 사람 참 보기 좋네요. 사진 한번 찍어도 될까요?
커플     :  물론이죠. 땡큐입니다.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불어 피부를 간지럽히고 유람선은 잔잔한 파도를 타고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앞에는 토론토의 환상적인 풍경이 보이고 주위에는 많은 커플들이 사랑을 나눈다. 이렇게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자기들 보기 좋다는데 사진 촬영을 거부할 리 만무하다. 그렇게 나는 커플들의 다정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간혹 남남 커플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차마 사진 촬영을 요구할 수 없었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돈 많아 보이는 인도 귀족 커플.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레인맨 선정 베스트 커플.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그때그때 달라요!"

예쁘고 멋진 커플들을 찍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토론토의 스카이라인을 카메라에 담는 과정이 더욱 즐거웠다. 2층 갑판에 올라 사진을 찍다 보니 엄청난 모기들의 습격을 받아야 했지만 멋진 풍경에 마냥 신이 났다. 게다가 2층에서는 담배를 태울 수 있어서 담배연기로 모기도 쫓고 중간중간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타워 중에서는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CN타워를 중심으로 양옆에 늘어서 있는 고층 빌딩들의 자태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러한 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크루즈투어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또한 낮에 찍는 사진과 밤에 찍는 사진, 그리고 매직아워에 찍는 사진의 느낌이 그때그때 달라서 다채로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삼각대를 사용하지 못해 보다 깨끗하고 선명한 야경사진을 찍지 못한 것은 아쉽다.

흑형     :  와우, 사진 멋진데?
레인맨  :  땡큐! ^^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빛 또한 급격히 부족해졌다. 그때 어디선가 닌자처럼 등장한 흑형이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더니 칭찬을 해 주었다. 빛은 부족했지만 DSLR카메라가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니겠는가. 고감도로 찍어 3인치 LCD로 보면 대충 찍어도 예뻐 보이고 작품사진같아 보인다. 물론 대형 모니터로 확인해보면 망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흑형은 카메라에 달린 LCD에 사기를 당한 것 같았다.

흑형     :  나랑 바꿀래?
레인맨  :  아니... -_-

흑형은 자신의 아이폰 카메라는 사진이 잘 찍히지 않는다며 내 카메라와 교환을 요구했다. 물론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덩치가 좀 있고 무섭게 생긴 흑형이었기 때문에 처음 2초 동안은 완전 긴장했다. 흑형은 웃자고 한 말에 정색하며 싫다고 한 나를 뒤로 하고 자신의 남자친구 곁으로 닌자처럼 사라졌다. 흑형이 사라지고 난 뒤 배 안쪽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루즈투어의 하이라이트인 댄스타임이 시작된 것. 음악소리에 이끌려 배 안으로 들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지에 올라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까 만난 흑형도 보였다. 흑형은 물 만난 고기처럼 즐겁게 놀고 있었다. 부드러운 웨이브와 빠르면서도 절도 있는 팝핀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흑형의 움직임은 닌자 같았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은 토론토의 스카이라인.
원본 사진을 보려면 클릭~



크루즈투어는 오후 9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투어의 마지막은 신나는 댄스타임이었다. 'We No Speak Americano'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사람들과 토론토의 아름다운 야경을 동영상에 담아 보았다. 촬영을 하는데 빛이 너무 모자라서 감도를 12800까지 올렸더니 노이즈가 아주 자글자글하다. 중요한 건 그래도 어둡다는 것. 어쨌든 댄스타임이 끝나자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격정적으로 춤을 추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셀린 디온의 'The Power Of Love'를 차분히 따라 부르며 블루스타임을 즐겼다. 토론토의 밤은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Harbour Front, Toronto,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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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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