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바닷가 어느 마을에 심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심씨와 부인 정씨는 아이를 갖지 못해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았는데 별안간 신기한 태몽을 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 귀여운 딸 아이를 갖게 되었다. 부부는 귀하디 귀한 딸 아이에게 '청'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세 식구는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청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정씨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게다가 심씨는 심한 안질을 앓아 맹인이 되고 만다.

"심봉사가 또 젖동냥을 하러 왔구만!"

심봉사는 엄마 없는 청이를 위해 이집 저집 젖동냥을 하러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앞도 보지 못하면서 딸 아이를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심봉사와 그의 품에 안겨 완전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청이가 안쓰러워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다. 모녀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또, 서로를 의지하며 고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청이가 7살이 되었다.

심청은 7살이 되던 해부터 홀아버지를 봉양하기 시작했다. 이웃집에서 빨랫감이나 바느질거리를 얻어다 일을 해주고 품삯을 받아 간신히 끼니를 이어나갔다. 한창 부모의 품속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고사리같은 손으로 일을하며 홀아버지를 모시는 심청의 효성은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 소문은 건넛마을을 넘어 유럽까지 퍼져 나갔다.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너 내 수양딸 안 할래? 그럼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는데 말야!"

"님아, 즐이염!"

효녀 심청에 대한 소문을 들은 건넛마을 부잣집 부인은 심청이를 수양딸로 삼고 싶어 했지만 심청은 시니컬하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부잣집의 입양 제의가 어린 심청에게는 분명 달콤한 유혹이었겠지만 홀로 남게 될 아버지를 두고 자신만 배불리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청의 나이도 어느덧 13살이 되었다. 심청은 여전히 홀아버지를 봉양하며 살았고, 그날도 어김없이 일을 하러 나섰다. 건넛마을 부잣집의 방아를 찧어 주는 일이었는데 난이도가 높은 일인 만큼 받을 수 있는 일당과 곡식도 많았다. 하지만 심청의 몸은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일만 하며 지냈던 탓이었다. 그래서 일을 모두 끝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국 해가 지고 나서도 일을 끝낼 수 없었다.

"아니, 청이가 왜 이렇게 늦지?"

올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심청이 집에 오지 않자 심봉사는 점점 걱정이 되었다. 좌불안석이던 심봉사는 결국 심청을 찾아 집을 나서게 되었고,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깊숙한 구렁에 빠지고 말았다.

"나 좀 살려주삼. 거기 누구 없소?"

구렁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심봉사는 목청껏 소리치며 도움을 청했다. 때마침 그쪽으로 지나가던 화주승이 심봉사를 발견, 구렁에서 꺼내 주었다. 그리고 심봉사가 맹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스님은 놀랄 만한 제안을 하게 된다.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좋소. 내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겠소이다!"

심봉사는 화주승의 제안에 앞뒤 생각하지도 않은 채 서약을 하고 말았다. 자신이 눈만 뜰 수 있다면 완전 소중한 딸 아이를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봉사는 곧 후회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에 공양미 300석을 마련할 방도가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 안색이 무거워 보여요. 무슨 걱정이라도?"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심봉사를 보며 심청이 물었다. 허나 심봉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 생각에 밤잠을 설친 심청은 다음날도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그렇게 출근을 하던 심청은 동네 사람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몰래 고민하는 아버지의 사정을 전해듣게 된 것이었다.

"공양미 300석만 있으면 아빠가 눈을 뜰 수 있다고?"

지금부터 쌀농사를 해 볼까? 아니면 과거 입양 제의를 했던 부잣집에 부탁해볼까? 그것도 아니면 모금운동을 펼쳐 볼까? 어쩌지? 심청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양미 300석은 어린 심청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심청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고,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기 위해 가까운 해변을 찾았다. 심청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혔다. 그런데 어디선가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심청은 구렁에 빠져 울부짖고 있는 물범을 발견했다. 점박이 옷을 입고 있는 완전 귀여운 새끼 물범이었다. 엄마를 따라 잠시 육지로 올라왔다가 누군가 파 놓은 구렁에 빠진 모양이었다. 심청은 구렁에 빠진 물범을 꺼내 바다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범의 안녕을 빌었다. 물범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자 심청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청~~"

심청이 돌아서던 그때 바다에서 또 다시 울음소리가 들렸다. 심청이 구해준 새끼 물범이 어미와 함께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어미 물범의 입에 커다란 조개 하나가 물려 있었다. 물범들은 조개를 남겨둔 채 다시 바다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어리둥절해진 심청은 조개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심봉사와 함께 조개를 열어 보았다.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아니, 이거슨!!!!!!"

조개껍데기를 열자 굉음과 함께 빛이 쏟아져 나왔다.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빛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난 뒤 자세히 확인해보니 진주가 보였다. 그것도 조개 만큼이나 커다란 진주가... 게다가 그냥 진주도 아니고 무려 흑진주였다. 어미 물범이 자기 새끼를 구해 준 보답으로 흑진주를 선물한 것이다. 심청은 기쁜 마음에 심봉사를 껴안고 울었다. 바로 그때 심봉사가 입을 열였다.

"진주가 아주 예쁘구나!"

심봉사는 마치 진주가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히 속삭였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심청은 심봉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죽어 있던 심봉사의 시선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빠! 설마 내가 보여요?"

심봉사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래, 보인다! 우리 청이 얼굴이 보인다!"

심봉사가 눈을 떴다. 진주의 강력하고 신비한 빛이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 울고 나니 이제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두 사람은 진주를 들고 건넛마을 부잣집에 찾아갔다. 진주를 팔아 돈과 곡식을 마련할 요량이었다.

"님아, 흑진주 사실래염?"

심청이 들고 온 흑진주를 본 부잣집 부인은 진주의 아름다운 빛깔과 화려함에 놀랐고, 크기에 다시 한번 놀랐다. 자신의 전 재산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대단한 진주였다.

"얼마?"

"제시!"

"흠...너 쌀 필요하지? 300석이면 되겠어?"

"쌀 이제 필요없는데? 쌀로 줄거면 600석 이하 즐!"

심청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부잣집 부인은 결국 심청의 강수에 무릎을 꿇었고, 쌀 600석과 가축 몇 마리를 내주는 조건으로 진주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성공리에 거래를 마친 심청과 심봉사는 이후 쌀집을 차려 행복한 삶을 이어 나갔다.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심청전의 배경이 백령도?"

백령도에는 우리나라 3대 고전소설 중 하나인 심청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산재되어 있다. 두무진 앞바다 인당수와 심청이 연꽃을 타고 살아났다는 연봉바위, 심청이 타고 온 연꽃이 해안에 밀려 왔다는 연화리 마을 등 심청전의 전설과 일치하는 지명들이 그러하다. 백령도는 이러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심청각에는 심청전과 관련된 영화 및 고서, 판소리 등의 자료들과 심청전의 내용을 극화한 모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심청각은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심청각을 찾은 사람들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백령도의 시원한 풍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 또한 심청각 내부는 짧게 둘러보고 밖을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참고로 심청각의 입장료는 단돈 1,000원! 역사와 문화 체험을 위한 백령도여행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다. 백령도에는 심청각 외에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곳들을 짧게나마 소개하며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심청각을 지키고 있는 탱크의 위엄.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심청각 옆에는 최대 사거리 23.5km를 자랑하는 화포가 자리 잡고 있다.


백령도 연화리 중화동교회 2011, ⓒ Reignman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인 중화동교회.


백령도 연화리 중화동교회 2011, ⓒ Reignman

중화동 교회가 세워진 지 무려 113년이 되었다. 교회 옆에는 창립 백주년 기념비도 서 있다.


백령도 연화리 중화동교회 2011, ⓒ Reignman

중화동교회 옆에 위치하고 있는 백령기독교역사관에 들어가면 기독교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백령도 연화리 중화동교회 2011, ⓒ Reignman

백령도에는 많은 교회가 있다. 중화동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이다.


백령도 남포리 담수호 2011, ⓒ Reignman

백령대교를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담수호.


백령도 남포리 화동염전 2011, ⓒ Reignman

담수호 옆에는 백령도에 남아있는 마지막 염전인 화동 염전이 자리 잡고 있다.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백령도 진촌리 심청각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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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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