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설렘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해지는 두근거림, 그 기분 좋은 설렘은 여행을 더욱 활기차고 행복하게 하는 순기능이 된다. 설렘은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지속된다. 다가올 일들이 현실이 되는 것, 현실이 추억이 되는 것, 추억을 기록하는 것 모두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불안정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오히려 흥분이 되는 이유는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설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렘은 여행을 끝마친 이후에도 지속된다. 여행에는 쉼표가 있을 뿐, 마침표는 없을 테니까. 새로운 여행을 꿈꿀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바로 여행의 설렘이다.


제주도 티웨이항공 2010, ⓒ Reignman

제주도 티웨이항공 2010, ⓒ Reignman


2010년 12월 28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잠에서 깨어 창밖을 바라보니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여 있다. 눈길에 차가 밀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집을 나선다. 차가운 눈송이들이 거센 바람에 날려 뺨을 간지럽힌다. 춥다. 

추운 날씨에 약간의 짜증이 느껴질 무렵 도착한 버스, 잽싸게 몸을 싣는다. 도로에 눈이 워낙 많이 쌓여서인지 속도가 나질 않는다. 아직 시간이 많긴 하지만 아무래도 안되겠다. 지하철로 갈아타야겠다. 출근 시간도 아닌데 사람들로 가득찬 지하철, 포화상태다. 한 대를 보내고, 두 대를 보내도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채우고 있다. 안되겠다. 그냥 타야겠다.

"푸쉬~! 푸쉬~!"


제주도 티웨이항공 2010, ⓒ Reignman

김포공항 2010, ⓒ Reignman

김포공항 2010, ⓒ Reignman


도저히 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인데도 어떻게 자리가 생겨 간신히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날씨는 춥지, 눈은 많이 오지, 만원 지하철에 아침부터 기분이 축 처진다. 물론 내 얘기는 아니다. 출근 혹은 퇴근을 하는 회사원, 학교에 가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답답한 만원 지하철 따위가 어디 여행의 설렘을 덜어 낼 수 있겠는가.

오전 8시 30분, 김포공항 도착.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부린다. 그런데 공항의 상황이 좋지 않다. 아니, 매우 나쁘다. 눈은 그쳤지만 활주로는 이미 폭설로 인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제설작업을 열심히 해도 안개가 잔뜩 끼어 많은 비행기들이 결항 및 연착될 것이라는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제주도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을 하지 못해 회항하는 경우까지 생겼으니 이거 오늘안에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전 10시에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오후 1시가 되어도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갇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불안해진 사람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자욱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지연됐던 비행기들의 날갯짓이 하나둘씩 재개하기 시작한다. 나를 싣고 갈 티웨이항공 TW705편도 이제 곧 날개를 펼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들려 온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다.


제주도 티웨이항공 2010, ⓒ Reignman


"어서오세요. 레인맨님."

6시간 정도 공항에 발이 묶여 있다 보면 여행의 설렘도 어느 정도 잊혀지게 마련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닥치게 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짜증과 불안감 때문에 설레는 기분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행기에 오른다. 승무원들이 환한 미소로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으로 인해 -10으로 줄어들었던 설렘 게이지가 0을 넘어 +10으로 올라간다. 여행의 설렘을 더해주는 스튜어디스의 미소, 이런 것이다.


제주도 티웨이항공 2010, ⓒ Reignman


날씨가 안좋긴 안좋은가 보다. 롤링이 제법 잦다. 그래도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 승무원의 미소 만큼이나 시원한 파란 하늘이 여행객들을 반겨 준다.


제주국제공항 2010, ⓒ Reignman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커먼 먹구름이 제주국제공항을 뒤덮기 시작한다. 김포공항에서 날씨와 자연의 무서움을 톡톡히 느낀 바 있기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 시커먼 먹구름이 과연 어떤 징조가 될까.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제주 여행은 아주 특별한 여행이 되었다. 28일부터 2박 3일로 계획한 일정이 악천후로 인해 우도에 갇히게 되면서 5박 6일로 바뀌어 2010년의 마지막과 2011년의 시작을 우도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우도에서 보낸 연말과 새해가 좋았는지 어땠는지는 차차 풀어보고자 한다.

"사랑합니다!"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여행, 피로가 많이 쌓인 것 같다. 몸도 많이 피곤하지만 정신적인 피로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승무원 누나들의 하트 서비스는 최고의 선물이 된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부작용 중 하나는 피로이다. 여행을 끝마친 이후 전해지는 여독은 일상으로의 회귀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여독을 푸는 것도 여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나름 고된 일이 될 수도 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 누나들이 보내주신 하트와 미소 덕분에 고된 과정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여행의 설렘을 더해주는 대신 피로는 덜어주는 승무원의 미소,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다.



제주도 티웨이항공 2010,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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