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깊은 울림과 페이소스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시>. 이창동 감독의 작품에는 갈수록 깊은 울림이 더해지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은 그동안 한석규, 설경구, 문소리, 전도연 등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며 그들의 호연을 이끌어 내고, 그 호연으로 하여금 작품의 울림을 더하는 탁월한 리더십과 연출력을 선보여 왔다. 그런 그가 <시>에서는 대배우 윤정희와 함께한다. 사실 필자는 윤정희란 배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저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에서 작품상을 시상하러 나오던 옛날 배우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하긴 1994년작인 <만무방>을 끝으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15년만에 컴백을 했으니 그녀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250여편에 달하는 필모그래피 중 단 한 편의 영화도 감상해 보지 못했으니 윤정희 선생은 나에게 작품상 시상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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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에서의 윤정희는 대단한 흡인력을 자랑하며, 말그대로 호연을 펼친다. 곱디고운 자태를 하고 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내면의 고통과 갈등, 역시나 곱디고운 발성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내면의 아픔... 모든 것이 완벽하다.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밝고 경쾌한 겉모습에서 이상하리만치 그득 배어나오는 애상적인 분위기, 이러한 분위기는 미자(윤정희)란 인물이 지나온 인생길과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미자의 과거는 <시>의 플롯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 미자의 아우라 즉, 윤정희의 연기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윤정희의 연기도 그렇고 뭐랄까, 80년대 방화를 보는 것처럼 다소 촌스럽고 순박한 느낌이 있지만 그 느낌이 참 좋다. 필자는 비록 윤정희가 출연한 영화를 단 한 편 감상했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윤정희는 전설이다. 그냥 살아있는 전설이다.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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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완벽에 가깝다

영화 <시>는 다소 파격적인 프롤로그 영상으로 시작한다. 어느 한 마을의 소박한 풍경을 보여주더니 난데 없이 등장하는 파격적인 장면을 통해 주인공 미자와 영화가 지고 갈 고난을 암시한다.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에서 역시 이창동 감독의 솔직하면서도 대담한 화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창동 감독의 화법이 십분 발휘될 수 있으려면 뭔가 굵직한 사건이 하나 필요한데, <시> 또한 예외는 아니다. <밀양>에서의 유괴 사건만큼이나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 미자의 삶을 솔직, 대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내러티브 또한 기가 막히게 이어진다. 영화 <시>는 단 한 사람의 인물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단 하나의 장면도 낭비하지 않는다. 마치 그러한 의지를 담은 것처럼 각각의 쇼트를 비교적 길게 길게 가져가기도 한다. 그렇게 139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으로 영화를 구성한다. 그러면서도 인터미션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흡인력으로 몰입을 유도한다. 영화를 보면서 약간의 전율을 여러차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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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이지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나다니... <시>는 기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영화다. 윤정희와 김희라의 관록있는 연기까지 더해지니 '완벽'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다.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안내상과 박명신의 내공있는 연기도 좋고, 김용택 시인의 시인연기 마저 자연스럽다. 미자의 손자로 등장하는 종욱(이다윗)의 'TV보며 밥먹기' 연기 또한 정말 일품이다. 'TV보며 밥먹기' 연기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시>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미자의 내적 갈등을 관객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 <시>는 완벽한 각각의 요소가 다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작이다. 이제 곧 제63회 칸영화제가 개막한다. <시>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함께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있다. 이창동과 윤정희는 <시>를 통해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고 역사를 만들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을 '칸'이 인정하길 바란다. Reignman

※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시>는 이창동 감독의 여느 영화처럼 열린 결말을 갖고 있다. 미자가 소녀와 운명을 함께 한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그 모든 권리는 ⓒ N.E.W. / 파인 하우스 필름. 에 있음을 밝힙니다.

오래쓴만년필님 블로그에 영화배우 윤정희와 남편 백건우(피아니스트)의 인터뷰가 있어 링크합니다.
"우리는 평생 자가용 없이 손잡고 걸으며 산다" 윤정희 백건우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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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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