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서울에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다섯 개의 궁궐이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우리는 이를 5대 궁궐이라 부른다. 수백 년 전에 탄생한 유서 깊은 궁궐을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 씩이나 볼 수 있다니 서울은 참 매력적인 도시인 것 같다.

5대 궁궐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와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경복궁은 조선의 중심이자 으뜸 궁궐이라 볼 수 있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현재까지도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문화재를 복원함에 있어서 제발 신중에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 수십, 수백 억씩이나 처들여서 복원사업을 진행하면 뭐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균열이 생기고 담장이 무너져 내리는데... 문화재 복원은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숭고한 작업이다. 경복궁 역시 마찬가지, 앞으로는 뉴스를 통해 문화재 소식을 접하게 될 때 좋은 소식으로만 접하고 싶다.


경복궁 2011, ⓒ Reignman

경복궁 2011, ⓒ Reignman


날씨 좋은 봄날 경복궁에 다녀왔다. 오랫동안 서울에 거주했거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복궁에 가 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학창 시절 소풍으로 또, 데이트 및 산책 장소로 경복궁을 몇 차례 가 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정작 경복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또한 외국인 친구가 경복궁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달라고 제안한다면? 자신이 없다.

"그럼 이제부터 공부하지 뭐, 난 쿨하니까!"


경복궁 광화문 2011, ⓒ Reignman

경복궁 광화문 2011, ⓒ Reignman

경복궁 근정문 2011, ⓒ Reignman


그런 나를 위해 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이 문화해설사로 나섰다. 그런데 경복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경복궁을 돌아다니며 해설을 하는 이배용 위원장을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기 시작했고, 근처로 도저히 다가갈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나홀로 산책을 시작했다.

전 문화재청장이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박사마저 인정했다고 하는 이배용 위원장의 궁궐 해설을 듣지 못했다는 것. 또한 쉽게 접할 수 없는 이배용 위원장만의 스토리텔링을 듣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선택에 만족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은 영 체질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영원한 지식을 잠시 뒤로한 대가로 순간의 감성을 얻었다."


경복궁 영제교 2011, ⓒ Reignman

경복궁 근정전 2011, ⓒ Reignman


"경복궁을 효과적으로 관람하는 방법!"

경복궁은 광화문을 시작으로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이 궁궐의 중심을 일렬로 가로지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경복궁의 중심이자 핵심 공간이 되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되어 절제된 아름다움과 서로 간의 조화를 유지한다.

우리는 거대한 규모 속에서 비대칭적으로 배치된 주변부 건축물들에 대한 복잡함을 경복궁의 중심을 통해 구분할 수 있음은 물론 이러한 구조를 통해 복잡함 속에서 통일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각 전각들의 외관과 위치, 쓰임새에 따라 외전과 내전, 그리고 후원과 기타공간으로 구분해서 살펴본다면 경복궁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2011, ⓒ Reignman

경복궁 근정전 내부 2011, ⓒ Reignman

경복궁 근정전 월대의 조각상 2011, ⓒ Reignman


"국보 제223호 근정전의 위엄!"

영제교를 건너 근정문을 넘어서자 봄볕의 기운을 받아 한층 더 위세를 뽐내고 있는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의 모습이 보인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을 규범으로 하여 재건된 근정전은 즉위, 책봉, 대례와 같은 나라의 주요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이다 보니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이라 할 수 있다.

Tip. 근정전의 서쪽 계단에는 생각하는 원숭이상이 있다. 무심코 지나칠 만한 원숭이의 모습을 이배용 위원장의 해설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원숭이에는 백성을 생각하는 임금의 뜻이 함의되어 있다고 한다. 생각하는 원숭이의 표정이 제법 심오하다.

소풍을 온 학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 단체관람을 온 어르신들까지 근정전의 위엄에 눌린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나 또한 왠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조심스레 셔터를 누른다. 근정전 마당에 무릎을 붙이고 길게 늘어선 품계석을 낮은 구도로 담으며 수백 년 전 임금을 모시던 신료의 마음가짐을 오롯이 느껴보기도 한다.


경복궁 근정문 2011, ⓒ Reignman

근정전에 올라 뒤를 한번 돌아본다.
따스한 봄의 햇살과 함께 경복궁 나들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입장하고 있다.
근정문 뒤로 정부청사의 모습도 보인다. 신구의 조화가 이채롭다.


경복궁 만춘전 2011, ⓒ Reignman

경복궁 강녕전 2011, ⓒ Reignman

경복궁 연생전 2011, ⓒ Reignman

경복궁 함원전 2011, ⓒ Reignman


"부속 건물들의 역할!"

근정전을 지나 사정문을 넘어서면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궁전인 사정전이 나온다. 그런데 온돌이 없는 편전인 사정전에서 겨울을 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전의 좌우에서 편전의 기능을 보완하는 만춘전과 천추전에는 온돌이 설치되어 있다.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이곳에서 경연이나 정무를 보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한편 경복궁은 왕의 침전인 강녕전과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으로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또한 임금의 주침전인 강년전의 양옆에는 부침전으로 분류되는 연생전과 경성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교태전의 오른쪽에는 조선 전기의 왕인 세조가 불상을 안치해두고 내불당으로 활용한 곳으로 알려진 함원전이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경복궁에는 다양한 부속 건물들이 영역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부속 건물들의 역할을 알아보는 것도 경복궁을 관람하는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다.


경복궁 침전 영역 2011, ⓒ Reignman

경복궁 침전 영역 2011, ⓒ Reignman

경복궁 침전 영역 2011, ⓒ Reignman

경복궁 침전 영역 2011, ⓒ Reignman


"쉿~"

궁궐에서 침전은 보통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지만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 및 잔치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와 관련된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그래서일까? 침전 영역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은밀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경복궁 2011, ⓒ Reignman

경복궁 2011, ⓒ Reignman


은밀한 분위기의 침전 영역을 벗어나 조선왕조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향한다. 경복궁은 거대한 규모 만큼이나 곳곳에 많은 정원과 후원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복궁의 대표적인 후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경회루와 향원정을 둘러보고자 한다.


경복궁 경회루 2011, ⓒ Reignman

경복궁 경회루 2011, ⓒ Reignman

경복궁 경회루 2011, ⓒ Reignman


"국보 제224호 경회루의 비경!"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봄바람을 따라 잔잔한 물결이 치는 연못 속에 자리한 경회루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다름이 없다. 비록 미천한 글 솜씨와 겸손한 사진 실력으로는 경회루의 아름다움을 10억분의 1도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장은 감동으로 요동친다.

국가브랜드 위원회 이배용 위원장 왈. 침략이라 함은 그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존심을 짓밟는 가혹한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문화의 현장에서, 특히 경복궁을 통해 마지막으로 가슴 속에 담아야 할 것은 다른 나라를 존중하면서 우리나라를 스스로 지킬 줄 아는 자존의식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길은 남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세계인들과 함께 귀중한 경험을 나누고 마음을 모으면서 평화의 길에 우리 대한민국 브랜드가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의 답사를 마치겠습니다.


경복궁 향원정 2011, ⓒ Reignman

경복궁 향원정 2011, ⓒ Reignman

경복궁 향원정 2011, ⓒ Reignman


"경복궁의 미(美)를 종결한다. 향원정!"

함화당과 집경당 북쪽 후원 영역에 향원지라는 네모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취향교로 이어지는 연못 한 가운데 향원정이 있다. 사람들은 경회루와 향원정을 빗대어 각각 남성과 여성의 후원이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경회루의 근엄하고 웅장한 이미지와는 달리 향원정의 이미지는 아늑하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가득차 있다.

향원정을 바라보자 경회루 앞에 섰을 때는 미처 반응하지 않았던 내 안의 여성성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들며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수염을 기른 남자가 향원정을 바라보며 울먹이고 있으니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다. 따스했던 봄볕이 저물어 가면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객기는 그만 부리고 이제 그만 경복궁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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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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