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홍콩에 도착한 이튿날 빅토리아 피크를 찾았다. 빅토리아 피크는 과거 식민지 시절 영국인이 해발 552m의 타이핑산 정상에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붙인 공원으로 홍콩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아무래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시내보다 기온이 2~3도 정도 낮고, 습도 또한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홍콩의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일까? 돈 많은 부유층들은 일찍부터 이곳에 별장을 지어 살았다. 습도와 기온이 낮은 데다가 전망까지 훌륭하니 홍콩 최고의 부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빅토리아 피크 주변을 거닐다 보면 호사스러운 저택들과 고급 맨션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내 눈에 좋아 보이면 다른 사람 눈에도 좋아 보이는 법!"

빅토리아 피크는 홍콩 내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이다. 정상에 오르면 홍콩섬의 빼곡한 마천루 빌딩숲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침사추이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물론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현지인들에게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사실 평일에도 사람은 많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 인파와 데이트를 나온 커플들,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 출사를 나온 사진가, 그리고 각국의 여행객들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빅토리아 피크를 가득 메운다. 왕자든 거지든 요플레를 먹을 때에는 뚜껑부터 핥아 먹듯이 부자고 거지고 간에 빅토리아 피크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한가지란 말이다.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빅토리아 피크, 무엇을 타고 갈까?"

Way to the Peak, 빅토리에 피크에 가려면 센트럴에서 버스, 미니버스 등을 이용하거나 직선으로 산을 타고 오르는 피크 트램을 이용해야 한다. 요금과 소요 시간, 분위기 모두 다르지만 왠만하면 피크 트램을 타고 가는 것이 좋다. 승객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다소 긴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지루했던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해주는 피크 트램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1시간 이상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 피크 트램은 피크의 또 다른 명물이다. 내려올 때에는 버스를 타더라도 올라갈 때에는 꼭 피크 트램을 권하고 싶다. 강추!

침사추이의 숙소에서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넘어간 나는 소호(SOHO) 지역을 둘러보다가 사진도 찍을 겸 겸사겸사 셩완의 웨스턴마켓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그리고 웨스턴마켓 앞에서 트램을 타고 홍콩공원 앞에서 하차한 뒤 피크트램 승강장으로 향했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야경을 찍는 것이 그날 저녁의 주요 일정이었기 때문에 매직아워 시간에 맞추기 위해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움직였다. 그런데 홍콩공원 서쪽에 위치한 피크트램 승강장 앞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Tip. 앞서 말했듯이 빅토리아 피크에는 1860년대 말부터 부유층의 고급 맨션과 호텔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로가 없어 말이나 마차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출신의 알렉산더 핀들레이 스미스의 추진으로 1888년 피크트램이 개통되었다. 당시 피크트램은 석탄을 이용하는 증기기관차였으나 1926년 52명을 수용하는 전차로 바뀌었다. 이후 조금씩 규모를 늘려 1989년에는 120명을 수용하는 현재의 전차로 바뀌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운행하는 피크트램은 15분 간격으로 하루 90회를 운행하는데 120여 년간 단 한 번의 사고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줄이 너무 긴데?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줄을 서서 기다린지 어느덧 20분.
여전히 길게 늘어서 있는 대기열에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승강장 앞 분수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
기나긴 줄에 급박해진 내 마음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아오, 진짜! 사람 쩔어!"

1시간을 기다려 겨우 도착한 승강장 입구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6시를 훨씬 넘긴 시각이었고 앞으로도 30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7시 전에 해가 떨어지는 홍콩의 일몰 시간을 감안했을 때 최소한 6시 30분에는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 도착해야 하거늘... 마음은 점점 더 급박해져 갔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초함을 감출 수 없었던 이유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삼각대를 펼쳐 놓은 뒤 매직아워의 황홀한 발색을 여유 있게 기다릴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홍콩여행에서 빅토리아 피크를 다시 찾을 만한 여유도 없었다.

레인맨  :  지금이라도 버스나 택시를 탈까요?
가츠     :  지금 버스를 타는 건 죽 쑤어 개 주는 꼴입니다. ㄷㄷㄷ
레인맨  :  오, 지금 그 비유 괜찮은데? 설득력 있어. ㅋㅋㅋ

빽빽한 사람들 틈바구니속에서 점차 기운을 잃어가고 있을 무렵 겨우겨우 매표소 코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어차피 옥토퍼스 카드를 이용하여 피크트램을 탈 생각이었고 내려올 때에는 15번 버스를 이용할 예정이었기때문에 표를 따로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매표소 앞에 붙어 있는 다양한 패키지 상품들을 보며 빅토리아 피크와 피크트램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피크트램 티켓은 HK$28(성인 기준이며 왕복은 40$)에 팔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크트램과 스카이테라스, 마담투소 홍콩 등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 티켓을 구매했다. 각각 30$, 160$에 판매되고 있는 스카이테라스 전망대 입장권과 마담투소 홍콩 입장권을 피크트램 티켓과 함께 구입하면 빅토리아 피크의 주요 관광지를 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마담투소 패키지 티켓을 가진 사람은 긴 줄을 기다리지 않고 앞쪽 줄로 바로 입장할 수 있다는 초특급 특혜가 있다. 하지만 옥토퍼스 카드나 다른 티켓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 티켓을 구입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비싼 티켓만 대접해주는 건가?

개인적으로 마담투소 홍콩을 꼭 한번 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티켓을 따로 구매하지 않고 그냥 옥토퍼스 카드를 이용하여 피크트램에 올라탔다. 스카이테라스의 경우 유료 전망대이기는 하지만 무료 전망대인 사자정자나 루가드로드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전망을 보여 주며, 가격에 대한 부담도 그렇게 크지 않아 이용해 볼 만하다. 하지만 사람이 많고 삼각대를 펼칠 수도 없기 때문에 야경사진을 찍기에는 그렇게 좋은 포인트가 아니다. 물론 사람이 적을 때에는 삼각대를 펼쳐도 되지만 사람이 많을 때 삼각대를 펼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일일 뿐더러 피크타워 직원의 제지가 들어온다.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피크트램 승강장 앞에 서 있던 아저씨.
처음 발견한 0.5초 동안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밀랍인형이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누구? 혹시 피크트램 사장?


Peak Tram Terminus,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드디어 피크 트램이 도착했다.
승차장으로 진입하는 피크 트램의 포스를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카메라를 머리 위로 들고 대충 인증샷만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Peak Tram,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8시가 다 되어서야 피크트램을 탈 수 있었다.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이 45도 각도로 들어오는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지만
사진을 찍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피크트램 안에서 찍은 사진이 당시의 심경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Peak Tower,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약 7분을 달린 피크트램이 피크 타워(Peak Tower)에 도착했다.
피크트램 터미널, 전망대, 마담투소 홍콩, 마르쉐 등이 입점해 있는 피크타워는 빅토리아 피크의 상징이다.
피크트램을 타고 다시 내려가려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Peak Tower,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피크 타워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이소룡과 그 옆에서 포즈를 따라하는 처자의 모습.
자세 나온다. 역시 대륙... ㄷㄷ;


Peak Tower,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피크 정상에서 담은 첫 야경사진.
매직아워도 진작 끝이 났고, 느긋하게 담배 한 대 태우며 테스트용으로 찍어 보았다.
아래 나무들이 V자 형태로 있는 사진을 보긴 했는데 뭔가 위치가 낮아 보인다.
아, 그 사진은 스카이테라스에서 찍은 사진이었지...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치명적인 야경을 자랑하는 루가드로드!"

하늘도 이미 어두워졌고 어차피 계획보다 훨씬 늦어진 시간, 저녁도 안 먹었지만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사진을 찍으며 마실 요량으로 커피부터 한 잔 샀다. 그리고 루가드로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루가드로드는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영국인들에 의하여 홍콩섬 정상에 산책용으로 지어진 곳인데 얼마는 튼튼하게 지었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특별한 보수공사 없이 잘 버티고 있다고 한다. 15분 남짓 걸었을까? 우측으로 길게 늘어서 있던 높다란 나무숲이 사라지고 그 속에 감추어져 있던 홍콩의 야경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사진가들이 삼각대를 펼쳐 놓고 홍콩의 치명적인 야경을 담고 있었다.

루가드로드 전망대는 빠른 걸음으로도 10분 이상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주위의 아무런 구애 없이 야경사진을 찍을 수 있어 사진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포인트이다. 전망대라고 해서 망원경을 설치해 놓거나 벤치를 비치해 놓는 등 따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길의 한복판이었다. 또한 전망대까지 향하는 길이 다소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발산하지만 관광객들도 많고 조깅을 하는 서양인들도 종종 눈에 보이기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만 아니라면 여자 혼자 돌아다녀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홍콩의 163만 4천 8백 23불짜리 야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사진가들.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악랄가츠 또한 야경사진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평생 기억에 남을 루가드로드에서의 야경을 배경으로 인증사진도 한 장 박았다.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인증샷 하나 더 추가! ㅎㅎ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이런 야경은CG로도 못 만들어!"

피크트램을 타기 위해 기다렸던 시간과 배고픔 따위는 이미 잊은지 오래, 루가드로드 전망대에 도착하여 홍콩의 야경을 접하는 순간 모든 걱정과 시름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IFC빌딩과 중국은행, 센트럴 플라자, 홍콩상하이은행, 퍼시픽 플레이스, 익스체인지 스퀘어, 자딘 하우스, 청콩 센터, 시틱 타워 등 홍콩섬에 밀집되어 있는 고층 빌딩숲의 화려한 풍경과 저 멀리 보이는 침사추이의 아련한 풍경까지 루가드로드에서 내려다본 홍콩의 야경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또한 이런 야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순수한 감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건물은 세우지도 못해!"

사실 홍콩의 이러한 야경은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에서는 이들 빌딩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디자인이 평범한 빌딩은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밤에 조명을 화려하게 켜둘수록 전기료를 대폭 할인해 주며 홍콩의 야경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화려한 야경 뒤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홍콩섬의 야경이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 주지는 않지만 이러한 야경이 있기 때문에 피크타워가 있는 것이고, 침사추이에 자리 잡은 호텔과 바, 음식점들이 큰 이익을 보는 것 아니겠는가. 관광산업에 대한 홍콩의 장기적인 이해와 넓은 안목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Lugard Road, Victoria Peak, Hong Kong Island, Hong Kong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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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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