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대한민국 서울에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다섯 개의 궁궐이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다섯 개의 궁궐 모두가 서울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 창덕궁은 애초에 경복궁을 보조하는 궁궐로 지어졌고, 경복궁에 비해 규모와 역사도 부족하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복궁보다 먼저 복구가 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제일의 궁궐이 되었다.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창덕궁은 지난 1997년 12월 유세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내용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또한 창덕궁은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5대 궁궐 중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궁궐은 창덕궁이 유일하다.


창덕궁 돈화문 2011, ⓒ Reignman

창덕궁 진선문 2011, ⓒ Reignman

 
"위원장님 하이!"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장마철의 어느 날 창덕궁에 다녀왔다. 비 때문에 창덕궁을 둘러보는 것도, 우산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도 다소 불편했지만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창덕궁 앞에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5월 경복궁 나들이에서도 함께해주신 이배용 위원장은 이번에도 친히 문화해설사 역할을 수행하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사학을 전공하고 또, 사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이배용 위원장의 해설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녀의 청산유수와도 같은 달변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재미있는 해설은 아니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긴 지루한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창덕궁 진선문 2011, ⓒ Reignman

창덕궁 인정전 2011, ⓒ Reignman

창덕궁 인정문 2011, ⓒ Reignman


"창덕궁에는 살생 방지용 장치가 있다!"

그러나 이배용 위원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며 창덕궁 해설을 시작했다. 위 사진에 나와 있는 인정전과 인정문의 처마 밑을 자세히 보면 그물과 뾰족한 쇠붙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제비나 그 밖의 다른 새들이 처마 아래 둥지를 트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니, 왜?

물론 제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제비가 이곳에 둥지를 틀면 천적인 구렁이가 자연스럽게 꾀는 법이고, 그렇게 나타난 구렁이는 죽여야 하는데 신성한 궁에서 살생은 또 금물! 그래서 애초에 제비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그물이나 쇠붙이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결국 저것들은 살생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창덕궁 낙선재 2011, ⓒ Reignman

창덕궁 낙선재 2011, ⓒ Reignman

창덕궁 낙선재 2011, ⓒ Reignman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 낙선재!"

인정전과 선정전을 지나 낙선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낙선재는 궁궐의 전각이면서도 단청을 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그래서 창덕궁이 아닌 별개의 공간인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편 낙선재는 예술에 관심이 각별했던 헌종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서화를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마련한 개인적인 공간이다.

낙선재에서 '복을 내리는 집'이란 뜻을 가진 석복헌은 한 여인에 대한 헌종의 깊은 사랑이 담긴 전각이다. 왕실에서 복이라 함은 다름 아닌 세자를 얻는 일을 말한다. 헌종은 세자를 얻기 위해 후궁 경빈 김씨를 간택, 함께 지낼 새 보금자리로 이들 전각을 마련했다. 그러나 헌종은 경빈 김씨를 맞이한 뒤 약 2년 만에 후사도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낙선재는 헌종의 사랑과 한을 품고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창덕궁 후원 부용정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 부용지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 부용지 2011, ⓒ Reignman


"창덕궁의 백미, 후원!"

창덕궁은 궁궐의 웅장하고 화려한 면모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후원이 아름다운 곳이다. 경복궁의 경회루와 향원정과는 또 색다른 매력이 있다. 조선의 왕들 또한 창덕궁의 아름답고 넓은 후원을 사랑했다고 한다. 창덕궁의 후원은 궁궐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다. 옛날에는 호랑이나 표범 같은 맹수가 가끔씩 나타났다고 하니 후원의 깊이가 무슨 강원도 산골짜기 수준과 비슷한가 보다.

후원은 원래 왕과 왕실 가족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왕이 참석하는 군사 훈련과 활쏘기 행사가 열렸으며, 대비를 모시는 잔치나 종친 또는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도 베풀어졌다. 성종 때에는 후원에서 불꽃놀이를 하기도 했다. 후원이 워낙 아름답고 넓으니 참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던 것 같다.

이러한 창덕궁의 후원을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어 무척이나 즐거웠다. 후원은 자유 관람이 되지 않고, 해설사와 함께 정해진 시간 안에 둘러보는 제한관람만 허용되는 곳이다. 물론 입장료도 따로 내야 한다. 이날 비가 오기는 했지만 좋은 기회를 통해 자유롭게 후원을 둘러보게 되었으니 나름 열심히 증거를 남겼다. 한 손에는 우산,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바동바동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한다.


창덕궁 금천교 2011, ⓒ Reignman

임진왜란 등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을 때도 살아남은 거북이의 모습이다.
금천교를 수호하고 있는 이 거북이의 나이는 600살이 넘었다.


창덕궁 대조전 2011, ⓒ Reignman

보물 제816호로 지정된 대조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인상 깊다.


창덕궁 2011, ⓒ Reignman

대조전을 지나 낙선재로 향하는 길에 담은 창덕궁의 소박한 풍경.


창덕궁 2011, ⓒ Reignman

대조전을 지나 낙선재로 향하는 길에 담은 창덕궁의 소박한 풍경. (2)


창덕궁 낙선재 상량정 2011, ⓒ Reignman

낙선재 위로 자리 잡고 있는 상량정의 모습이 매우 화려하다.


창덕궁 낙선재 만월문 2011, ⓒ Reignman

상량정 바로 옆에는 독특한 모양의 만월문이 있다. 만월문을 차지하고 있는 꽃담의 모양도 매우 독특하다.


창덕궁 후원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길. 비에 젖어 촉촉해진 풍경이 몽환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창덕궁 옥류천 소요암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에 있는 옥류천. 이끼가 잔뜩 낀 소요암을 보니 장마철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창덕궁 후원 영화당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 영화당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영화당의 모습이다. 럭셔리 스포츠카에서나 볼 수 있다는 걸윙도어를 창덕궁에서 보게 될 줄이야...


창덕궁 후원 부용지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 부용지의 전경을 담은 파노라마 사진.


창덕궁 선정전 2011, ⓒ Reignman

창덕궁 희정당 2011, ⓒ Reignman


"창덕궁의 눈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창덕궁은 여전히 고상한 정취를 내뿜고 있었다. 사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궁궐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으로 궁궐의 대부분이 소실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일병합을 결정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어전 회의가 흥복헌에서 열렸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중전인 순정효황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왕과 부인 이방자 여서가 창덕궁에서 생활하다 생을 마쳤다. 이날 내린 비는 아무래도 그들에게 바치는 창덕궁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장마가 끝나는대로 다시 한번 창덕궁에 다녀올 생각이다. 그때는 창덕궁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다.


창덕궁 후원 애련정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 2011, ⓒ Reignman

창덕궁 후원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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