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제주도는 흔히 삼다도라 일컬어진다. 돌과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다 하여 붙여진 그 이름 삼다도. 이번에 제주도를 여행하면서도 새삼 느꼈지만 돌과 바람은 정말 많은 것 같다. 가는 곳마다 돌투성이인 제주의 모습과 기온은 높아도 거센 바람 때문인지 그 어느 곳보다도 추운 겨울을 간직한 제주를 십분 느낄 수 있었다. 수적으로 여자가 많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제주 여성들의 강단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제주도는 삼무도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고, 대문이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제주도에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자동차와 배는 기본이거니와 비행기까지 수차례 타본 경험이 있는 제주도의 어르신들이 한번도 타보지 못한 그것, 바로 기차이다. 이쯤 됐으면 제주도를 삼무도가 아니라 사무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에는 정말 기차가 없을까?"

아니. 이제 제주도에서도 기차를 볼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한다는 제주도 신비의 숲 *곶자왈, 최근 들어 바로 이곳에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비록 유원지의 놀이기구로 등록된 관광 목적의 기차이긴 하지만 길이 4.5km, 폭 61cm의 철로위를 50여 분 동안 달리다 보면 단순히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는 기분이 아니라 마치 숲속 기차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천천히 달리는 기차 속에서 원시림의 아름다운 풍경과 곶자왈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어 기차여행만의 감성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다.

※ 곶자왈 : 숲이란 의미의 '곶'과 암석들과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뜻하는 '자왈'의 제주도 방언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에서 느끼는 기차여행의 감성이 너무 궁금하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에코랜드'라는 이름의 테마파크를 찾았다. 알록달록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들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기차를 타러 왔것만 루돌프를 보니 갑자기 썰매가 타고 싶어진다. 변덕을 뒤로하고 기차역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티켓을 끊고 기차를 타기 위해 메인역으로 향한다. 선로 옆에 직립 토끼 가족이 춤을 추고 있다. 하얀 눈에 둘러쌓인 하얀 토끼들의 자태에서 의외의 호젓함이 느껴진다. 왠지 밤이 되면 에코랜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이중생활을 할 것 같은 녀석들, 몹쓸 상상에 등골이 싸늘해진다. 하지만 새해가 토끼해라 그런지 토끼 가족들이 참 반갑다. 당장이라도 직립보행을 할 것 같은 토끼 가족들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흐뭇함에 미소를 머금는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그러고 보니 기차를 타는 것도 참 오랫만이다. 지하철이야 늘상 이용하고 있지만 기차와 지하철은 엄연히 다르다. 기차만의 여유와 운치를 어디 각박한 지하철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기차는 추억이 되고, 여행이 된다. 기찻길을 내려다보며 잠시 추억에 빠진다. 덜컹거리는 기차의 진동, 삶은 계란과 사이다로 대변되는 기차의 대표 간식, 창밖의 고즈넉한 시골 풍경들을 떠올리며 기차여행의 감성을 애써 되새겨 본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메인역에 도착한 기차에 올라 창밖을 바라본다. 저 멀리 보이는 토끼 가족들이 즐거운 여행을 하고 오라며 손을 흔드는 것 같다. 에코랜드의 기차는 1800년대 증기기관차인 볼드윈 기종을 모델로 삼아 영국에서 만들어진 기차이다. 붉은 색의 제주 송이를 상징하는 ①레드샌드와 아름다운 꽃을 상징하는 ②옐로우플라워, 제주 곶자왈의 숲을 상징하는 ③그린포레스트, 푸른 호수를 상징하는 ④블루레이크, 제주의 검은 돌을 상징하는 ⑤블랙스톤 등 총 5대의 기차가 30분에 1대씩 운행되고 있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칙칙폭폭!"

기적과 함께 출발한 기차가 10분 남짓 달렸을까, 첫 번째 역인 에코브리지에 도착한다. 메인역을 출발한 기차는 에코브리지역과 레이크사이드역, 피크닉가든역을 거쳐 다시 메인역에 종착한다. 그런데 에코랜드의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기차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5대의 기차가 30분에 1대씩 운행되고 있으니 기차를 놓치더라도 곧 도착하는 다음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2만여 평이나 된다는 엄청난 크기의 인공호수를 옆에 끼고 산책을 한다. 수상카페에 잠시 머물러 휴식도 취해 본다. 에코브리지역에서부터 레이크사이드역까지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서 시원한 경치를 감상하며 사진도 찍고 산책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중간중간 눈에 들어오는 커플들의 다정한 모습이 나로 하여금 담배를 물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내 물었던 담배를 거두고 흐뭇하게 지켜본다. 질투마저 관대함으로 바뀔 수 있는 이유는 에코랜드의 멋진 풍경과 기차여행의 감성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20분 정도 걸었을까,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풍차 하나가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크릿가든에 나오기도 했다는 풍차 오른쪽에는 레이크사이드역이 보인다. 레이크사이드역의 화장실에 잠시 볼일을 보러 들어갔다가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에 놀라 대충 끊고 다시 나온다. 그리고 피크닉가든행 기차에 서둘러 몸을 싣는다. 에코브리지역에서 레이크사이드역은 도보로 이동할 수 있지만 레이크사이드역에서 피크닉가든역은 꼭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기차를 놓쳤다고 기찻길을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그렇게 도착한 피크닉가든역. 피크닉가든역은 에코브리지역이나 레이크사이드역보다 볼거리가 많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피크닉 힐과 키즈타운이 있고, 곶자왈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에코 로드와 이끼고사리원이 있다. 간단한 간식과 음료, 커피 등을 맛볼 수 있는 스낵바도 있어 오랜 시간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차역이다.

피크닉가든역과 주변을 둘러보며 열차의 출발을 기다린다. 피크닉 힐의 벌판을 달리며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 키즈타운의 알록달록한 작품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피크닉가든역을 출발한 기차가 메인역으로 회귀하면서 1시간 동안의 짧은 기차여행이 마무리된다. 아쉬운 마음에 선뜻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밥도 먹어야 하고 다음 일정도 있으니 아쉬움을 뒤로한 채 기차에서 내린다.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에코랜드 피크닉가든역의 풍경


제주도 에코랜드 2011, ⓒ Reignman


"아가야, 집에 가자!"

"싫어 싫어. 나 기차 한번 더 탈래!"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엄마와 아이가 기차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방금 기차여행을 하고 온 입장에서 엄마와 아이의 심정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에코랜드, 매력적인 곳이다.

도움 주신 분들 ☞ 제주아띠 (www.jejuatti.com) & 티웨이항공 (www.twaya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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