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추격자와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2010년의 마지막을 뜨겁게 장식할 <황해>,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장편 데뷔작 <추격자>를 통해 500만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으며 한국형 스릴러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한 나홍진 감독이 또다시 묵직한 스릴러 영화를 하나 만들어 낸 것 같다. <황해>는 <추격자>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작품이다.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양날의 검과 같은 작품이다. 같은 장르의 영화라는 것과 이번 영화의 주인공 역시 하정우와 김윤석이 맡았다는 것은 <추격자>와 비교하여 기대심리를 갖게 하는 요소가 된다. 반면 <추격자>의 임팩트와 여운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황해>가 과연 <추격자> 만큼 해줄 수 있을지 하는 우려와 근심 또한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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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황해>는 같은 감독과 스텝과 배우와 장르라는 것만 빼면 <추격자>와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서스펜스로 중무장한 <추격자>와는 달리 <황해>를 지배하는 장르적 요소는 다름 아닌 드라마이다. 그것도 지독하리 만치 잔인하고 가슴 아픈 드라마가 더해지고 있다. 물론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하는 액션, 스릴러는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서 <추격자>의 속편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유사성 또한 갖고 있다. 결국 장르적 요소 마저 양날의 검과 같은 양면성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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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황해>가 <추격자>에 비해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자. 일단 <황해>의 스케일은 <추격자>를 압도한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타며 대한민국 전역과 중국까지 오가는 <황해>의 활동 범위는 망원동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두 남자의 추격전과 차원이 다르다. 1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규모 카 체이싱을 비롯한 아날로그 액션의 스케일 역시 두 남자의 몸싸움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자랑한다. <다크 나이트>에서만 컨테이너 차량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더니 <황해>에서도 거대한 트레일러가 전복된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니,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의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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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황해>는 상영시간에서도 <추격자>를 압도한다. 러닝타임(156분)이 워낙 길어 택시 운전수, 살·인자, 조선족, 황해, 이렇게 4개의 파트로 나누어 내러티브를 전개시킬 정도이다.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식의 배려라고 봐도 좋다.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를 비롯한 타란티노의 영화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방식은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를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파트를 나눔으로써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을 마무리하고 다음 신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잔뜩 긴장하며 영화를 감상하던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주어 인터미션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막간의 휴식까지 제공되는 <황해>의 긴 러닝타임에는 편집할 수 없고, 편집해서는 안되는 장면들이 모두 들어 있다. 무려 5,000여 컷 속에 담긴 이미지들은 스피디한 액션을 만들어 지루함을 달래 주고, 복잡하면서도 탄탄한 플롯은 딴생각할 여유 조차 없는 몰입도를 확보하는 요소가 된다. 이처럼 긴 시간을 알찬 요소들로 꽉 채운 영화가 바로 <황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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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독한 남자의 염세적 파노라마

구남(하정우), 택시운전수이자 살·인자이자 조선족이자 황해를 건너는 남자이다. 빚을 갚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면가(김윤석)의 청부살·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구남의 사투가 시작된다. <황해>에는 구남과 면가 말고도 태원(조성하)이 라는 조직폭력배가 등장한다. 극의 내러티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면가와 태원 덕분에 총도 맞고, 칼도 맞고, 도끼도 맞아가며 벌이는 구남의 처절한 도피 행각과 추적, 거칠고 독한 남자의 염세적인 파노라마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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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기에 나홍진 감독과 그의 영화에는 염세적인 성향이 상당한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관객들이 원하는 이야기의 괴리를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 같은데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또한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루하고 굴곡 많은 삶과 처절한 최후를 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어설프게 대중과의 합의점을 찾다가 이도 저도 아닌 영화를 만드는 신인감독들을 숱하게 봐왔다. 개중에는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아무런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 감독은 참 인물이다. 섬세하고 깊이 있는 미장센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며, 기술적인 배려는 선보이되 이야기 만큼은 자신의 철학을 강요하는 그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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