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지난 주말 경상북도 안동과 봉화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두 곳 모두 유명한 여행지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가보는 곳이라 설렘으로 부푼 마음을 안고 안동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부터 우박과 비를 쏟아내던 하늘이 급기야 굵은 눈송이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며 여행자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예상보다 3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여 계획했던 여행을 100%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첫날의 궂은 날씨를 보상하듯, 거짓말처럼 찾아온 이튿날의 화창한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안동 여행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행선지, 경당종택입니다.


경상북도 곳곳에는 수많은 종가와 종택, 고가, 고택들이 있습니다. 수백, 수천년의 삶을 지탱해 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지요. 안동시에도 이러한 고택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경당고택,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중기 학자 경당 장흥효(1564-1633)의 종택입니다. 서후면사무소 삼거리에서 명리로 100m 정도 가면 위 사진에 등장하는 장태사신도비, 안동장씨성곡재사 표지석을 볼 수 있는데요. 표지석 앞 오른쪽에 경당종택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당종택 가는 길의 시골 풍경이 참 좋습니다. 궂은 날씨로 인해 땅은 흠뻑 젖어 있지만 시골의 풍경은 다소 건조한 느낌입니다. 추수가 모두 끝나 배고픈 논밭과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 가을의 풍성함 대신 겨울의 건조함을 느끼게 합니다.


경당종택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눈에 봐도 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경당종택의 위치는 제월대와 광풍정이 있는 봄파리였으나 약 24년 전 지금의 위치로 옮겨져 중건되었다고 합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곳은 경당 장흥효의 종택입니다. 이 집을 지은 장흥효는 학봉 김성일의 문하로 영남학파의 근간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성리학자입니다.


경당종택을 비롯한 안동의 고택들은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블로거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블로거 안다님, 그 또한 경당종택의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경당종택의 모습이 어떻게 담겼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경당종택 내부를 둘러봅니다. 아궁이와 가마솥, 연탄 등 옛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감회에 빠져듭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추억이 되지만 그들에게는 현실이 됩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좀 더 편한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겠지만 전통을 고수하고 옛것을 사랑하고 지키는 종손들의 뚝심과 자부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 뒷산에서 그네를 뛰며 놀고 있는 아이들.


낯선 여행자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 즐거움을 선사해준 종손과 종부, 그들의 자손들에게 고마움 역시 표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동과 봉화를 비롯한 경북의 고택 체험은 지역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현재 관광상품화 되어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고택에서의 하룻밤과 맛있는 음식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종택의 어르신들은 이런 방식이 아주 불편하셨나 봅니다. 우리는 예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손님을 모셔왔다, 돈을 받고 손님을 대접할 수 없다, 뭐 이런 입장이셨던 것 같습니다. 결국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어르신들을 잘 설득하여 좋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경당종택 뒷마당에서는 개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깔깔씨님, 여자사람블로거입니다. 낯선 여자사람이 다가가니 급하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녀석, 분명히 수캐입니다. 자기 앞으로 다가와주길 기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돌아와! 나에게 돌아와! 멍멍"

상당히 시니컬한 그녀, 개의 울부짖음을 무시합니다. 개가 무시를 당하다니, 이건 개무시입니다. 고개를 들어 쿨하게 돌아서는 그녀를 바라보는 개의 눈망울은 촉촉한 습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이리와, 내가 대신 놀아줄게."

그런 제가 고마웠는지 녀석이 관심을 보입니다. 코를 들이대며 냄새도 맡습니다.

"그래 임마, 냄새 좋지? 나 오늘 향수 뿌리고 왔어."

그렇게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녀석의 애교에 웃기도 하고, 그 보답으로 주머니속에 꼬불쳐 두었던 과자를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녀석이 과자를 먹는 동안 저 또한 과자를 먹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름과자 말입니다. 물론 동물에게도 간접흡연이 적용되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름과자를 먹고 옵니다. 그리고 다시 녀석에게 다가갑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거든요.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 따르던 녀석이 갑자기 시선을 피합니다. 아무리 눈을 맞춰 보려고 해도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합니다. 헤어짐이 아쉬워 먼산을 응시하는 걸까요? 아니면 담배 냄새가 싫어서 무시하는 걸까요? 끝내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자리를 뜹니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나를 무시한 걸까요? 진실은 녀석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개에게 무시를 당하다니 이거야 말로 진정한 개무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개무시를 당하면 보통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게 마련인데 이건 뭔가 슬픈 개무시입니다.

☞ 같은 날 저녁 안동 전통한지 체험관에서 만난 잘생긴 개

같은 날 저녁 또다른 개를 만났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놀고 싶지만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중력의 위대함을 새삼 느낍니다. 아무래도 오전에 당한 개무시의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 당분간은 개를 가까이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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