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프레디난트 리히트호펜은 비단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파미르고원 서쪽 지역과 서북 인도로 수출된 사실에 주목, 이 루트를 실크로드라 명명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실크로드의 문화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 이후 실크로드의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와 일본의 나라 지역까지 포함하게 된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의 오아시스 지대를 거쳐 이스탄불과 로마에 이르는 무역루터 전체,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초원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초원길, 그리고 남방의 아라비아해 인도양 동남아시아를 우회하여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해상의 바닷길 모두 실크로드에 포함된다. 결국 실크로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동서 문명 교류의 젖줄이라고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지난주 <실크로드와 둔황> 관람을 위해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지난 2010년 12월 18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크로드와 둔황'은 실크로드의 문화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번 고찰하고자 하는 의미의 기획특별전이다. 이번 기획전에는 세계 3대 여행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포함, 230여 점의 실크로드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대여 전시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의 경우 1,300년 만에 귀향하여 처음으로 공개 전시되고 있는 터라 대단히 뜻 깊은 의미가 될 것 같다. 따라서 4월 3일까지 진행되는 <실크로드와 둔황>은 평소 실크로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 역사와 유물, 문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특별한 전시가 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실크로드의 도시와 유물,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이라는 희대의 견문록을 살펴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전시실 앞을 잠시 서성이는 나, 이윽고 카메라를 꺼내 <실크로드와 둔황>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담아 사진으로 기록한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 유물들을 들여다보며 동선을 살핀다. <실크로드와 둔황>은 8세기 혜초가 여행했던 길을 따라 파미르고원 동쪽의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관람객들이 실크로드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회 구조를 1부 '실크로드의 도시들', 2부 '실크로드의 삶과 문화', 3부 '둔황과 왕오천축국전', 4부 '길은 동쪽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네 갈래로 나누어 놓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1부 '실크로드의 도시들'에서는 혜초가 직접 지났던 길인 서역북도, 타클라마탄 사막 남쪽의 서역남도, 그리고 동서로 연결하는 교통로가 있는 천산북로의 도시와 유물을 소개한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황금대구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카라샤르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황금으로 만든 허리띠의 버클로 큰 용 한 마리와 작은 용 7마리가 구름 위에서 노는 듯한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공예품이다. 위 사진의 왼쪽에 있는 작품이 황금대구인데 머리카락처럼 가는 황금실을 용접해서 만들고 그 사이에 작은 금구슬을 가득 채워 장식하여 아름답게 표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에 있는 작품은 1세기 평양에서 출토된 황금대구인데 모양이 매우 흡사하므로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실크로드 지역은 대부분 1년 중 강수량이 증발량보다 훨씬 적은 건조지대이다. 건조지대의 가장 전형적인 삶의 모습은 오아시스 농경과 유목생활인데 오아시스의 농경과 유목만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오아시스 사이에는 서로 부족한 물품을 교환하는 무역이 일찍부터 발달하게 되었다. 2부 '실크로드의 삶과 문화'에서는 이러한 실크로드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들을 소개한다. 인물조각, 회화, 생활 공예품 등의 유물을 통해 실크로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떠올려 보는 시간이 아주 유익하고 흥미로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3부 '둔황과 왕오천축국전'에서는 <실크로드와 둔황>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왕오천축국전을 소개한다. 왕오천축국전은 통일신라시대 승려인 혜초가 다섯 천축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기록으로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정치, 문화, 경제, 풍습 등을 알려주는 세계의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의 탐험가 폴 펠리오가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처음 발견하였고, 1915년에는 일본의 다카구스 준지로에 의해 혜초가 신라의 승려임이 밝혀졌다. 관람객들은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둔황 석굴과 벽화,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을 통해 혜초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실크로드와 둔황>은 4월 3일까지 계속되지만 왕오천축국전의 경우 3월 17일에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하니 이왕이면 그전에 관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둔황에서 란저우까지 1,000km나 되는 오아시스 지대, 하서회랑이 펼쳐진다. 이 지역과 하서회랑 북쪽의 닝샤, 란저우를 거쳐 도착하는 장안, 더 나아가 신라의 경주까지 이르는 실크로드의 기나긴 여정. 4부 '길은 동쪽으로 이어진다'에서는 이 기나긴 여정을 소개한다. 관람객들은 둔황에서 동쪽 시안에 이르는 간쑤 및 닝샤 지역의 유물과 실크로드를 통해 경주로 넘어온 서역의 유리잔, 서역인을 표현한 돌조각 등의 유물을 통해 실크로드의 기나긴 여정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전시실을 빠져나와 벤치에 앉아 잠시 동안 상념에 잠긴다. 실크로드의 기나긴 여정을 겨우 2시간에 걸쳐 둘러보고 나왔지만 백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언젠가 실크로드를 직접 밟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또한 1300년 전 혜초가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과거와 현재,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는 땅을 밟으며 나만의 왕오천축국전을 기록하고 싶다.

덧) 실크로드의 깊은 역사와 기나긴 여정을 짧은 시간 전시를 관람하는 것으로 어찌 대신할 수 있겠는가. <실크로드와 둔황>이라는 전시를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으로 대신하는 것 또한 무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전시되고 있는 유물 사진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포스팅했으며, 본 포스트는 절대 사진이 주가 아니라 글이 주가 되는 포스트임을 강조하고 싶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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