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우도에 들어간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악천후는 계속되고 배가 뜰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우도의 날씨는 늘상 일탈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에게도 불안감을 가져다 줄 만큼 짓궂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눈발과 거센 바람, 먹구름 사이로 아주 잠깐 얼굴을 내비치는 태양과 파란 하늘, 우도에서만 50년 넘게 살아온 마을 어르신께서 살다살다 이런 날씨는 처음 본다고 하셨을 정도로 궂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톨칸이, '촐까니'라고도 불리우는 우도의 숨은 비경이다. 톨칸이는 재미있는 이름 만큼이나 이름이 가진 뜻 또한 재미있다. '톨'은 소나 말에게 먹이는 건초 따위를 뜻하며, 칸이는 소나 말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큰 그릇을 뜻한다. 그래서 톨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사실 우도가 우도인 이유는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툭 튀어나온 기암절벽은 소 얼굴의 광대뼈 부분이고, 이곳 남서쪽에 위치한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을 건초를 쌓아올린 더미를 뜻하는 '촐눌'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촐놀'과 소 사이에는 소 먹이통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이를 바로 이 톨칸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우도의 숨은 비경 톨칸이의 모습을 담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톨칸이의 모습을 제대로 담기 어려울 뿐더러 눈발이 계속 날려 촬영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날씨가 조금 풀린 다음날 톨칸이를 다시 한번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먹구름이 우도 전체를 가리고 있지만 고맙게도 톨칸이에만 태양이 밝게 비추고 있다.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허나 그것도 잠시, 하늘이 허락한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마음 같아서는 저 멀리 보이는 능선을 따라 걷고 싶지만 금새 찾아온 궂은 날씨에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계단이 하나 있길래 내려가보니 웬 동굴이 하나 나온다.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깊지 않은 공간이지만 동굴은 들어가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한번 들어가 본다. 눈을 피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무더운 여름날 이 안에 들어와 있으면 무지 시원할 것 같다.

우도의 숨은 비경이라고 하는 톨칸이를 충분히 구경했고 밥도 먹어야 하니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잠깐 나가서 사진 찍고 놀다가 다시 들어와 밥을 먹는다. 하루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섬에 오랜 시간 갇혀 지내다보니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좋다. 이런 생활을 5일이 아니라 50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도는 그만큼 좋은 곳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이 많이 고프다.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제주도 우도 톨칸이 2010,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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