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밴쿠버에서는 겨우 이틀 밖에 머물지 못했는데 여행의 기점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곳이 참 많은 것 같다. 덕분에 밴쿠버 여행기만 벌써 여섯 개 이상 쓰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밴쿠버 여행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마지막이라고 하니 시원한 마음보다 섭섭한 마음이 더 크지만 다른 도시의 캐나다 여행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밴쿠버는 이쯤에서 정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밴쿠버의 마지막을 장식할 소재는 개스타운(Gastown)이다. 밴쿠버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는 개스타운은 밴쿠버 여행기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소재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밴쿠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지역이기도 하지만 클래식한 분위기의 거리 풍경이 여행자들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하고 또, 묘한 정취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밴쿠버의 인사동, 개스타운!"

개스타운은 서울의 인사동과 많이 닮아 있다. 캐나다의 짧은 역사를 감안하면 상당히 오래 되었다고 볼 수 있는 19세기 중엽에 건설된 곳이니 만큼 거리와 건물의 분위기에서 빈티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사동의 수많은 상점이 그러한 것처럼 독특한 물건을 파는 앤틱샵과 독특한 인테리어의 카페, 레스토랑 등이 밀집되어 있어 개스타운을 거닐며 인사동과 참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스타운은 밴쿠버를 대표하는 올드타운임에도 불구하고 올드퀘벡이나 올드몬트리올에 비해 큰 볼거리가 없는 편이다. 그저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물로 보여?"

그렇지, 개스타운을 대표하는 스팀클락을 깜빡하고 있었네. 사실 개스타운에도 큰 볼거리가 하나 있다. 일전에도 짧게나마 소개한 적이 있는 스팀클락(Steam Clock)이 바로 그 주인공. 개스타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팀클락은 워터가와 캠비가의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세계 최초의 증기 시계탑이다. 정각, 15분, 30분, 45분, 이렇게 15분마다 증기를 뿜으며 기적 소리를 내는 광경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스팀클락 앞에는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런 의미에서 스팀클락 덕분에 개스타운이 유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사실 나도 이 스팀클락을 보기 위해 개스타운을 찾았다. 밴쿠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개스타운을 갈까 말까 조금 고민하기도 했지만 스팀클락의 기적소리를 꼭 한번 들어 보고 싶어 다른 곳을 포기하고 개스타운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만난 스팀클락의 모습은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에 첫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친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울던 스팀클락의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 개스타운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스탐클락의 기적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참고로 아래 링크 페이지의 동영상을 틀어 보면 스팀클락의 기적 소리를 들을 수 있다.



Steam Clock,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개스타운의 명물 스팀클락.


Steam Clock,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개스타운의 명물 스팀클락. (2)
사진도 찍고 기적 소리도 듣기 위해 이곳에서 30분 이상 머물렀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걸인마저 독특한 개스타운!"

밴쿠버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 난 뒤 '캐나다 플레이스'를 가장 먼저 둘러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단 한 곳만을 둘러보았을 뿐인데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버린 것. 그나마 캐나다는 한국에 비해 해가 훨씬 길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햇빛이 남아 있었고, 그 덕분에 삼각대 없이 스냅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일이 수월했다. 어쨌든 더 늦기전에 서둘러 개스타운으로 향했다. 개스타운은 캐나다 플레이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도보로 이동했다. 한 10분 남짓 걸었을까? 개스타운이 근처에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고, 표지판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티지한 느김의 거리가 등장했다. 그렇게 나는 개스타운의 독특한 분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말을 걸어 오는 낯선 남자...

백형     :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만 줄래?
레인맨  :  25센트? 돈 맡겨 놨어? 없는데?
백형     :  오케이~ 즐거운 하루 보내~

거지였다. 행색이 아주 멀쩡하길래 처음에는 거지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돈을 구걸하는 거지가 맞았다. 어느 나라를 가든 거지들이 있고, 캐나다를 여행하면서도 거지들을 많이 보았지만 밴쿠버, 특히 개스타운의 거지만큼 독특한 스타일은 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개스타운의 거지들은 비교적 깔끔한 행색을 하고 있으며, 상당히 쿨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돈의 액수를 정확히 밝힌다. 개인적으로 되게 재미있는 부분이었는데 더도 덜도 말고 딱 25센트를 요구한다. 우리돈으로 치면 300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이기 때문에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렇게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한 부분을 간파하고 25센트를 요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잔돈 거슬러 주는 거지 보셨나요?"

25센트를 요구했을 때 동전을 거네면 거지들은 '땡큐, 갓 블레스 유!' 라고 말하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말투가 딱딱한 편이라 가식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눈빛을 보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운 사람에게 겨우 25센트를 준 것 뿐인데 그로 인해 얻게 된 행복 에너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감동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면 거절했을 때의 반응은 어떨까? 앞서 말했듯이 개스타운의 거지들은 상당히 쿨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좋지 않은 말을 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고, 집착을 하지도 않는다. 미안하다, 나 돈 없다라고 하면 'OK!' 라는 말과 함께 쿨하게 돌아선다. 상대하는 것이 귀찮아서 시선을 피하면 그들 역시 시선을 돌린다. 심지어 잔돈을 거슬러 주는 거지도 본 적이 있다. 25센트 동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보니 1달러 동전을 받은 거지가 75센트를 돌려준 것. 물론 동전을 건넨 사람은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개와 함께 구걸하던 걸인의 모습.
주로 젊은 걸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돈통에 동전을 넣으면 개와 주인이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멍멍! 땡큐! 고맙습니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쇼핑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개스타운!"

개스타운을 돌아다니다 보면 독특한 소품을 파는 상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관광 명소로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면세점이나 백화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기념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말 독특한 물건만 구입하는 것으로 쇼핑의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나머지 흔한 물건들은 구경하는 것으로 재미를 찾는 것이 개스타운에서 쇼핑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유니크한 물건과 흔해 빠진 물건은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여행지에서의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점 밖에 진열된 상품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아이쇼핑을 즐겼는데 개성 넘치는 상점들이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다 들어가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비슷한 분위기의 상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다보니 차츰 싫증을 느끼기도 했다. 만약 독특한 상점들과 스팀클락이 내가 기억하는 개스타운의 전부였다고 한다면 개스타운이라는 곳에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개스타운의 거지가 가장 기억이 남는다. 그들이 전해준 웃음과 감동, 그리고 그들에게 느낀 고독한 삶의 체취를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는 비록 사진으로 기록할 수 없는 무형적인 것이지만 내 마음 속 한구석에 바래지 않는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개스타운의 초입 지역.
그동안 보았던 밴쿠버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개스타운에서 바라본 하버 센터 타워 전망대.
높이 168m의 전망대로 밴쿠버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본 밴쿠버의 야경이 그렇게 멋지다고 하는데...
지난 여행에서는 그냥 지나쳤지만 다음에는 꼭 올라가 보고 싶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그냥 카페 전경 찍고 있는데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해 준 백형.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 색깔이 참 곱다.
한 모금 달라 할 걸 그랬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개스타운의 또 다른 볼거리이자 개스타운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된 개시 잭(Gassy Jack) 동상.
개시 잭의 본명은 존 데이튼이며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바로 허풍선이, 수다쟁이라는 뜻의 개시 잭.
잘나가던 그의 술집과 여관이 있는 일대의 지명이 개시타운으로 통하게 되었고
이 이름이 줄어 현재의 개스타운이 되었다.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Gastown,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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