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최근 여수와 담양, 보성 등 남해안 일대를 2박 3일 동안 여행하고 왔습니다. 일정 중에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포함되어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던 여행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요. 꿈에 그리던 곳... 즐거운 여행이었으나 나름 우여곡절을 겪은 여행이었답니다. 어떤 우여곡절이냐고요? 사건은 여행 첫날 아침 눈을 뜨며 시작합니다.

"오 마이 갓!"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 마음속으로는 설마 혹은 제발을 외치며 시계를 확인합니다. 이번 여행은 단체 팸투어였기에 아침 7시까지 양재역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런데 7시에 눈을 뜬 것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6시 정도에 눈을 떴다면 다급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겠지만 어차피 버스는 한참 전에 지나갔으니까요.


그래도 한번 가볼까, 7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지각생들도 좀 있을 것이고 8시 넘어서 출발을 할테니 한번 도전을 해봐? 3분만에 양치질을 하면서 샤워하는 스킬을 발휘하며 출발할 채비는 갖추었지만 제가 사는 곳과 양재역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1시간은 잡아야 합니다. 그래도 일단 출발합니다.

하지만 역시 무리입니다. 7시 30분에 출발하여 8시 40분에 도착했지만 버스는 이미 가고 없습니다. 담배를 하나 꺼내 뭅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혼자서라도 가. 담양의 랜드마크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보고 와야지. 고해!!!"
"담양까지 언제 가냐.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그냥 가까운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가지 그래. 고해!!!"

갑자기 머리 속에 등장한 천사와 악마의 의견을 저울질합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담양에 가기로 합니다. 그렇게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 저는 10시에 출발하는 담양행 티켓을 끊습니다. 참고로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담양으로 가는 버스는 10시 10분 일반버스와 16시 10분 우등버스, 이렇게 두 대가 있습니다. 버스가 많지 않으니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광주를 거쳐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1,900원이면 광주에서 담양가는 버스를 탈 수 있거든요. 시간도 40분 정도밖에 안걸립니다. 물론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번에 여행하면서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버스 출발 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아 있습니다. 일단 담배를 또 하나 꺼내 뭅니다. 담양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합니다.

"니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에 대해 뭘 알아? 니가 담양을 알아?"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아까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아 삐친 듯 한마디 합니다. 그러고보니 담양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티켓은 끊었지만 환불 욕구가 불타오릅니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고속터미널 내에 있는 영풍문고로 향합니다. 여행책을 찾아 담양 관련 정보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행지에 대한 정보만 있을 뿐, 어떻게 가야하는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정보는 얻었으니 마음이 아주 든든합니다.


4시간 가까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우등이 아닌 일반 버스를 타야한다는 사실이 내심 두렵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름다운 우등버스가 등장하고 오늘은 특별히 일반 가격에 우등으로 간다는 기사님의 축사가 이어집니다. 덕분에 이동하는 내내 숙면을 취합니다. 사실 아침 7시에 눈을 뜬 건 4시에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전날 '관세청장 인터뷰'가 있었고, 그것을 정리하느라 늦게 잠을 잔 것이지요. 5시에 알람을 맞추고 1시간만 푹 자고 일어나자던 계획이 그렇게 날아간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나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쨌든 담양에 도착하니 날씨도 좋고 기분도 아주 좋습니다. 잠도 푹 잤겠다 컨디션도 최상이지만 휴게소에서 먹은 부실한 점심 때문인지 배가 살짝 고픕니다. 그래도 담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름 만큼이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담양의 풍경 앞에서 후회는 곧 사치입니다.



인터넷이나 여행책자에서도 볼 수 없는 시골마을의 소소한 풍경들을 바라보며 여행의 매력을 십분 느껴 봅니다. 유명한 관광지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못지 않는 진귀한 풍경이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는 서울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진 경운기가 참 반갑습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가야하는데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물까지 있는 사찰이라니 계획에 전혀 없던 곳이지만 일단 가보기로 합니다. 담양용화사에 대한 내용은 아래 링크로 갈음합니다.




사찰을 둘러보고 나오니 대로변에 자전거 한 대가 뜬금없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라 여행하기 좋긴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걷는 것에 점점 싫증을 느낍니다. 때마침 등장한 자전거를 보니 갑자기 달리고 싶습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는 자전거도 대여해준다고 하니 빨리 가서 달려야 겠습니다.


이정표가 눈에 들어옵니다.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같은 방향에 죽녹원도 있네요.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죽녹원에도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반대 방향의 남촌마을도 설렁설렁 구경해보고 싶긴 하지만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대한 갈망에 잠시 보류, 가던 발길을 재촉합니다.


여행길의 풍경이 자꾸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노랗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여 환영 인사까지 합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쓱 한번 둘러보고 저 또한 벼들에게 인사를 한번 해봅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꼬꼬마 어린이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잽싸게 떨어뜨려 줍는 척을 합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남겨둔 채 유유히 사라지는 꼬꼬마 어린이...

ⓒ 토일렛픽쳐스 / 디씨지플러스. All rights reserved.

아무래도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소 민망하지만 어차피 안볼 사이니까 쿨하게 마음을 다잡고 자리를 피합니다.


드디어 도착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감격적인 순간입니다만 사진으로 보던 것 보다는 뭔가 심심한 느낌이 들어 약간의 실망감도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먼 길을 왔으니 가로수 그늘 아래 서서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런데 유명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솜사탕 아저씨나 사진사 아저씨도 없고, 맛있는 식당과 자전거 대여소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나밖에 없습니다.

"음... 이거 뭔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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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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