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장진 스타일

장진 감독은 자신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독특한 색깔의 코미디와 드라마를 작품에 녹여낸다. 예컨대,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며 '이거 장진 영화 아냐?' 라는 느낌을 받으면 그 영화는 여지없이 장진 감독의 영화였다. 감독의 스타일이 영화에 묻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장진 만큼 개성이 확실한 감독도 참 드문 것 같다. 그렇다. <퀴즈왕> 역시 전형적인 장진식 코미디의 범주 안에 속하는 영화이다. 뭐랄까, 우리네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들, 그런 황당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익살과 풍자,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는 나, 장진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느껴왔던 전형적인 수순이며, 이러한 패턴은 <퀴즈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Reignman

<바르게 살자>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장진 영화라고 느껴지는 작품이었는데, 장진의 제자라고 볼 수 있는 라희찬 감독의 작품이지만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장진의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장진스러운 작품이었다. 또한 <바르게 살자>에 출연한 배우들, 정재영을 비롯하여 이한위, 이철민, 조덕현, 공호석, 이해영, 이문수 등 장진 사단이라고 볼 수 있는 배우들이 고스란히 <퀴즈왕>에 출연하고 있다. 여기에 김수로, 한재석, 류승룡, 류덕환, 심은경, 임원희 등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수도 없이 출연하고 있는데 이는 다뤄야 할 인물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전반적인 흐름의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심지어 연출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감독 본인이 연기까지 하고 있다. 다행히 여러 등장인물의 개성과 디테일을 잘 살려 산만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면한 것 같다. 하지만 등장인물과 인물간의 갈등 구조가 너무 얕고 취약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수의 캐릭터를 보유한 상황에서 시간은 정해져 있고, 내러티브는 전개시켜야 하고...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영화가 된 것 같다.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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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

<퀴즈왕>의 이야기는 크게 전반과 후반으로 나눌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퀴즈왕이 되어 133억원의 상금을 거머쥐겠다고 결심하기까지를 전반전이라고 한다면 하프타임이라고 볼 수 있는 퀴즈쇼의 준비과정(몽타주 시퀀스가 주를 이룬다)을 거쳐 후반전인 퀴즈쇼에 이르게 된다. 하프타임은 제쳐 두고 후반전이 전반전에 비해 재미가 덜하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익살이 주가 되는 전반과 감동이 주가 되는 후반이라는 작전을 세운 것 같기는 하나 133억원이라는 거금 앞에서도 쿨하게 물러서는 퀴즈쇼 출연진들 덕분에 후반전의 임팩트가 아주 미약하다. 이러한 패턴은 그동안 장진 감독의 작품에서 계속되었던 고질적인 습관이다. 용두사미라고나 할까, 시작에 비해 끝이 항상 부진한 것 같다.Reignman

<큐브> 라는 영화가 있다.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큐브라는 미로에 갇혀 탈출을 시도하는 영화인데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그들이지만 목적은 같다. <퀴즈왕> 역시 마찬가지다. 해결사와 학생, 노름꾼, 중국집 배달원, 유도 선수, 경찰 등 직업도 나이도 성도 제각각이지만 퀴즈왕이 되어 133억원을 손에 쥐겠다는 목표에는 다름이 없다. 가진 자이건, 가지지 못한 자이건, 배운 자이건, 배우지 못한 자이건,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133억원이라는 돈은 누구나 탐할 만한 유혹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건 장진의 영화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퀴즈쇼의 출연진들은 133억이란 거금 앞에서 상당히 쿨한 자세를 보여준다. 사회자가 객기를 좀 부리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show가 거의 없다. 출연진들의 개인기에 깔깔대며 웃다가 정신줄을 놓은 상태라 철학적인 메시지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가 되어 버리고 알 수 없는 공허감에 개운하지 못한 기분으로 극장문을 나선다. <퀴즈왕>이 재미가 없다거나 졸작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장진 영화에 비해 나아진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구태의연한 장진 코미디의 한계를 느낀다.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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