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단순하게 받아 들여라

*라시의 격언을 던지며 시작하는 영화 <시리어스 맨>. 이 영화를 본 지는 제법 오래됐다. 시사회를 통해 봤으니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영화를 보면 보통 그날 밤 컴퓨터 앞에 앉아 리뷰를 쓰곤 하는데 <시리어스 맨>은 그럴 수 없었다. 단순함의 미덕을 미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이 오히려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리뷰를 차일피일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영화는 단순하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 가득 담긴 코엔 형제의 심각한 통찰과 혜안에서는 왠지 모를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 라시 (Rashi) : 성서와 탈무드를 주석한 중세의 유명한 프랑스의 종교(유대교)학자

문제 - 복잡함

언제나 독특하고 기발한 작품 세계를 펼치며 마니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코엔 형제의 블랙 코미디 영화 <시리어스 맨>. 이 영화는 유대인 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유대인인 코엔 형제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1960년대 미국 중서부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래리 고프닉(마이클 스터버그)이 라는 물리학 교수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혼 문제와 가족 문제, 직업 문제와 그외 소소한 문제들을 코엔 형제만의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고품격 블랙 코미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래리 고프닉에게 생기는 모든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아내와 아내의 정부가 요구하는 이혼, 뇌물을 주는 한국계 학생, 사유지를 자꾸 침범하는 이웃집 남자, 도박을 하는 동생, 코성형을 하겠다며 지갑에 손을 대는 딸과 안테나를 고쳐 달라고 보채는 아들, 주문하지도 않은 레코드 요금을 청구하겠다는 전화 등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래리 고프닉을 압박한다.

ⓒ Mike Zoss Productions / Focus Fea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러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 나면서 래리 고프닉을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리어스 맨>을 차지하는 모든 플롯은 단순함의 미학을 강조하기 위해 존재한다. 각각의 플롯은 별로 복잡하지 않으나 이 녀석들이 힘을 합치다 보니 래리 고프닉과 관객 모두를 복잡하게 만든다. 여기에 헐리웃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인 코엔형제의 사뭇 진지한 통찰과 혜안이 개입되면서 관객의 복잡함은 배가된다. <시리어스 맨>이 코미디 영화라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놓고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웃을 수 없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외모나 행동(래리의 아들인 대니가 미치도록 웃김)이 가장 큰 웃음 포인트였고, 여기에 코엔 형제의 풍자로 인한 실소와 냉소 정도가 추가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실소는 '코엔 형제의 풍자를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시리어스 맨>을 보는 관객들은 래리 고프닉과 함께 복잡함이라는 문제를 안고 가게 된다.

조언 - 랍비 (rabbi)

래리 고프닉과 관객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이제 조언이 필요하다. 래리 고프닉은 보기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복잡한 공식들을 써내려 가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물리학 교수다. 하지만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의적인 문제들이 개입되면서 그는 복잡함을 느낀다. *'랍비'라고 불리는 유대교 지도자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렇게 그는 랍비를 찾아간다. 왠지 모를 재밌는 표정의 첫 번째 랍비는 그냥 주차장을 한번 보라고 조언한다. 해답은 커녕 복잡함만 더해준 것 같다. 사실 첫 번째 랍비는 사이비 냄새가 좀 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주자창을 보라고 하며 시선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 랍비 (rabbi) : 나의 선생님 혹은 나의 주인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Daum 백과사전)

ⓒ Mike Zoss Productions / Focus Features. All rights reserved.

두 번째 랍비는 비교적 명확한 조언을 들려 준다. 그 조언은 <시리어스 맨>이 던지는 교훈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살면서 걱정을 많이 하는데, 대부분은 쓸데 없는 걱정이라는 것이다. 아니, 모든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래리 고프닉은 만족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두 번째 랍비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답은 필요하다. 전혀 바빠 보이지 않는 세 번째 랍비는 만나지 못한다. 대신 대니(래리의 아들)가 성인식을 치르고 만나는데, 세 명의 랍비 중 가장 위엄있어 보이는 그는 코를 한번 들이키더니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멤버 이름을 하나씩 열거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에 삽입곡으로 쓰인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 가사를 찾아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해답 - 각자의 몫

<시리어스 맨>의 결말은 워낙 불분명한지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코엔 형제의 의중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코엔 형제와 이 영화는 조언을 할 뿐 끝까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답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해답은 각자의 방식에 맞게 찾는 것이다. 굳이 또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각자의 몫이다. 해답에는 정답이 없다.

※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그 모든 권리는 ⓒ Mike Zoss Productions / Focus Features. 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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