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Movie Info

제6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클래스>는 프랑수아 베가도의 동명 원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원작 소설 저자인 프랑수아 베가도는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직접 영화에 출연했다. 그것도 주인공인 마랭 역을 맡아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교사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다. 그는 실제로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한 바 있으며, 그 경험이 소설과 영화를 작업하는 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클래스>의 연출은 로랑 캉테 감독이 맡고 있다. 필자는 로랑 캉테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그는 감정적인 면보다 현실적인 면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사실적인 수업

로랑 캉테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빌리자면, <클래스>는 35mm 카메라 대신 HD 카메라 3대를 이용하여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고, 컷의 전환이 빠른 편이며, 촬영 또한 실제로 프랑수아 베가도가 수업을 하는 것처럼 진행했다고 하니 관객들은 마치 실제 수업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 영화에 몰입할 수가 있다. <클래스>를 본 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이 영화 무슨 내용이야?' 잘 모르겠다. <클래스>에는 플롯이라는 게 딱히 없어 보였다. <비 포 선셋>과 같은 영화가 그랬듯이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끝난다. 왠지 시나리오도 없는 것 같았다. 극영화가 아닌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좋았다.

ⓒ Haut et Court. All rights reserved.

사실적인 표현이 정말 좋았다. '100분 토론'이 아닌 '129분 토론'을 보는 것 같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들의 대화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여담이지만 백인, 흑인, 아시아인, 아랍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이 작은 교실에 모여 있는 것은 지구촌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암튼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오해라는 큰 벽을 허물기 위해 그들은 끊임 없이 대화한다. '오해는 이해 이전의 상태,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계속해서 표현한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끊임 없이 생각하고, 끊임 없이 질문을 받는다. 그것이 <클래스>의 핵심이다.

필자는 헐리웃 장르영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 프랑스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클래스>를 포함하여 <예언자>, <꼬마 니콜라>,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등 최근에 감상한 프랑스 영화들이 하나같이 걸작들이라 취향에도 변화가 올 것 같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만약 당신이 '타인의 취향'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좋은 작품들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타인의 취향>이란 영화도 정말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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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필자는 <클래스>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클래스>가 평단과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클래스>가 이렇게 인정을 받은 이유는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질 높은 공교육 시스템을 자랑하는 프랑스 교육계의 현실을 까발린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클래스>를 보고 필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와... 수업 분위기가 진짜 자유롭고 평등하구나, 선생님은 모든 학생을 사랑하는구나, 참 부러운 교육 현실이다' 그런데 까빨리긴 뭘 까발렸다는 것인지...

필자가 중학생이던 90년대 중반, 앞머리가 눈썹을 가린다는 이유로 머리 위에는 고속도로(머리 중앙을 바리캉으로 밀어버리는 것)가 생기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삭발을 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은 반항 하는 거냐며 체벌을 가했다. 이어지는 원산폭격(땅에 머리박기)에 삭발한 머리에서는 고름이 나왔다. 친구 하나는 실신을 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거울을 봤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신나게 애를 팼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병원을 다녀야 했다. 고막이 터지고 각막이 찢어졌기 때문이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종종 있던 일이었다. 이보다 작은 폭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있었다. 인권을 유린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한 행태에 얼마나 익숙해 졌는지, 그냥 당연한 일인가보다 했다. 80년대, 70년대, 혹은 그 이전에는 모르긴 몰라도 폭력과 인권유린의 정도가 훨씬 더 심했을 것이다.

<클래스>에는 단 한 번의 폭력도 없다. (참고로 이 영화 12세관람가다) 욕설도 거의 없다. 교사는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러던 중 여학생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한 차례 한 것이 전부다. 근데 도대체 뭘 까발렸다는 것인가? 버릇없는 학생들의 행태? 아니면 교칙을 어긴 학생을 처벌하는 교사들? 앞서 말한 모욕적인 발언 말고는 딱히 까발린 것이 없어 보인다. 그마저도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프랑스 교육 현실의 '폭로'라기 보다는 '홍보'라고 느낀 것은 비단 나뿐일까? 요즘 아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참으로 궁금하다. 또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영화는 아주 재밌게 봤는데, 보고 나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교육이 너무 엿같았나 보다. 아니면 프랑스의 교육이 너무 상냥했거나...

1. 이 글은 과거 대한민국 교육의 상대적인 부조리함에 대한 집착과 현재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 대한 무지가 가득 담긴 영화리뷰다. 전자는 그렇다치고 후자에 관해서는 크게 반성한다.
2. 마음에 드는 대사 한 구절... "네가 하려는 말이 침묵보다 중요하지 않다면 그냥 닥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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