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같은 영화를 2번 이상 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고,
같은 책을 2번 이상 읽는 것에 대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러한 명언이 있다. 정확히 누가 남긴 명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감독 류승완이 무릎팍 도사에 나왔을 때 알려준 말이다. 어떤 영화계의 한 거장이 남긴 명언이라고 한다. 암튼 같은 영화를 2번 이상 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단 한번 보기에도 두려운 영화가 있다. 바로 9월말 개봉을 앞두고 있는 <내사랑 내곁에>가 그 영화이다.

사실 영화를 통해 얻는 슬픔은 즐거운 것이다. 슬프고 싶고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감수성이 메말라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슬픈 영화를 통해 보상을 받는다. 그리고 실제 경험했던 일이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공감대를 느끼기도 한다. 여기에 조금 억지를 보태면 지인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 등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될 슬픔 등을 영화를 보면서 리허설 할 수도 있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가 두렵다고는 했지만, 정작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김명민이다. 필자가 김윤석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배우 김명민은 '명민좌'라고도 불리우는 본좌급 연기자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느끼게해 줄 차원이 다를 슬픔은 상상만 해도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먼 길을 떠났을 때 그 여운은 정말 오래오래 남았다. 장준혁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될거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필모그래피

1996년 SBS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명민은 단역과 보조출연을 전전하다 2000년 <뜨거운 것이 좋아>라는 드라마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해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2001년 김명민은 비교적 일찍 결혼을 하고 신혼을 마음껏 즐기기도 전에 영화 <소름> 촬영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소름>은 정말 괜찮은 스릴러였다고 생각한다. 김명민은 물론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장진영의 연기가 대단히 좋았고, 특히 시나리오가 정말 탄탄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게 되고 이후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시기가 배우 김명민에게 가장 큰 슬럼프였다고 한다. 뉴질랜드로의 이민까지 결심했다고 하니 배우로서의 자괴를 느낀듯 하다.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안 하고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순전히 나 자신이다. 내가 나 자신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빠지는 나만의 자괴감 같은 거다.                            - 김명민 -

그러나 2004년 그의 연기인생에 반전을 가져다 준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 이때부터 배우로서, 그리고 스타로서 시쳇말로 잘 나가는 배우가 된다. TV출연도 많이 하고, 광고도 많이 찍고, 연말에는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후 드라마 <불량가족>에서는 코믹한 연기로 색깔있는 배우로 거듭나게 되고, 2007년에 드디어 본좌라는 수식어를 달게 해준 드라마 <하얀 거탑>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베토벤 바이러스>로 강마에열풍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돌아온다. 송승헌과의 공동수상이라는 다소 어이없는 결과이긴 했지만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걸어온 길을 간단하게 살펴 보면 굵직굵직한 드라마는 여러편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출연한 영화인 <리턴>이나 <무방비 도시>도 흥행 참패는 아니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본좌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이제는 영화에서도 송강호, 김윤석, 황정민 트로이카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업적을 남겼으면 하는 바람을 한번 가져본다.



장준혁이란 인물

'장준혁'이란 인물은 희대의 캐릭터다. 물론 감독을 포함한 스텝들과 동료 배우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지만, 희대의 캐릭터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김명민이다. <하얀거탑>은 의학드라마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의학드라마만으로 치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장소적 배경이 병원이기는 하나 법정싸움도 드라마의 절반을 차지하고, 특히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세력다툼과 남성들이 가진 정치성에 대한 관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에서 중견연기자들의 베테랑 연기, 감독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연출력, 김명민의 신들린 연기력이 어우러져 명품 드라마를  탄생시켰고, '장준혁'이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극중 장준혁의 대사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조건 없어. 무조건이야.'  장준혁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무런 조건도 두지 않는 인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준혁은 악역이다. 결혼도, 스승도, 친구도, 선후배도 성공을 위해 이용한다.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약자를 압박하여 잘못을 덮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장준혁을 미워할 수 없었다. 김명민은 이러한 악조건의 캐릭터를 무조건 공감하게 만든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필자는 장준혁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정말 묘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싫지도 좋지도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느낌.. 그런데 이러한 느낌을 다시 느끼기가 두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명민의 의연함

며칠 전 영화 <내사랑 내곁에>의 제작보고회가 있었다. 김명민은 20kg의 체중을 감량한 탓인지 핼쑥한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존경섞인 물음표를 던졌다. 그 물음표에 김명민은 '굶은 것은 내세울만 한게 아니다. 굶지 않을거였으면 이 역을 맡지 말았어야죠.' 라고 덤덤하게 대답하며 의연함을 보였다.

살을 빼니까 의식과 감각까지 같이 마비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어요.

나중에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감정이 극대화되고 극에 더 몰입을 해야 하는데 저는 반대로 몰입력이 깨지는 거에요. 자꾸 탈진하고... 그게 가장 힘들었던 점이 아닌가...

- 김명민 -

필자가 <내사랑 내곁에>를 두려워한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그 이유가 박진표감독과 배우 하지원과의 호흡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작품성을 인정받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얻어지는 청사진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성공할수록 루게릭병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혜택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과 가족들에게 어마어마하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김명민의 연기까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된다면 이건 두마리 토끼가 아니라 세마리, 네마리 토끼를 잡는 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필자가 가진 두려움은 어쩌면 실망감에 대한 두려움 일수도 있다. 아니면 의식적인 두려움 일수도 있다. 두려움으로 기대치를 약간 낮춤으로써 작은 실망조차 하지 않으려는 의지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 하는 것은 확실히 '김명민'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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