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악랄가츠, 절친한 블로그 이웃이자 착한 동생이다. 그런 그와 캐나다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많은 추억과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었다. 두 남자가 외국에서 여행을 하다 보니 같잖은 오해도 많이 샀지만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서로를 의지했고, 단 한 번의 다툼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마 혼자서 여행을 했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여행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기자!"

지난 캐나다여행은 악랄가츠라는 녀석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악랄가츠는 나보다 3살이 어린 동생이지만 그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서는 경외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둔해 보이는 얼굴과 어수룩한 말투는 나와 다를 것이 없지만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만큼은 샤프하기 그지 없었다. 6개월 공익 출신과 이기자 부대 출신의 미묘한 차이는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여실히 드러났다.


Niagara Falls, Ontario,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Saskatoon, Saskatchewan, Canada 2011, ⓒ Reignman


"May I Take a Picture?"

캐나다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참 많이 담았던 것 같다. 여행사진에 있어서 풍경을 담는 것도 좋지만 사람을 담지 않으면 너무 심심하지 않은가. 게다가 비교적 카메라에 관대한 외국인들의 경우에는 'May I Take a Picture?'라고 물으면 99.9%는 흔쾌히 승낙을 해 준다. 심지어 카메라를 보고 모델을 자청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그렇게 사진을 찍었고 하루하루를 충만한 자신감과 더불어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자신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레인맨  :  May I Take a Picture?
외쿡인  :  No.

이렇게 두 번 정도 까이고 나니 급하게 얻었던 자신감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평소 무척이나 소심한 성격이었던 나는 외국인들의 관대와 친절 덕분에 빠르게 자신감을 얻었지만 쉽게 얻은 자신감은 또 그만큼 빠른 속도로 잃게 되는 법, 결국 여행 6일 만에 소심남으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위니펙의 한 쇼핑몰의 애플샵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북에어를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
바로 이곳에서 2차 충격이 가해졌다. 애플샵에서 일하는 직원이 촬영을 제지한 것.
동의를 구하고 사람들을 찍는 것은 상관없지만 가게 내부를 찍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사진만 찍어야 하는가? ㅜㅜ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그렇다고 이렇게 멀리서 캔디드샷을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그렇게 급 소심해진 상태로 어시니보인 파크에 도착했다. 공원 잔디밭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놀이와 일광욕을 하며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여유로운 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말이 좀처럼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악랄가츠가 옆으로 다가왔다. 안경을 만지작 거리며 훈수를 두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샤프해 보였다.

가츠     :  형은 너무 뜬금없이 사진 찍자고 하니까 까이는 거임.
레인맨  :  ㅜㅜ
가츠     :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야지 기승전결이 없냐!

"없냐는 반말이자나?"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살 많은 형을 따끔하게 혼낸 악랄가츠는 갑자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던지고 선글라스로 갈아 끼더니 이내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더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멀리서 지켜본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매끄러웠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옆에 묻어서 찍은 사진. 이때부터 나는 묻어가기 작전으로 일관했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여긴 해수욕장인가?"

다음 대상을 물색하던 찰나 비키니에 핫팬츠를 입고 원반 던지기 놀이를 하는 누나들이 시야에 포착됐다. 발랄한 모습이 보기 좋아 사진을 찍자고 했다. 물론 그녀들이 아닌 악랄가츠에게 말했다.

레인맨  :  가츠님. 저 언니들 사진 한번 찍죠.
가츠     :  찍어서 뭐함. 별로 안 내킴.
레인맨  :  부탁이에요. 근데 가츠님 아까부터 말이 조금 짧다?

악랄가츠는 가기 싫은 눈치였지만 나는 구태여 트집을 잡아 결국 그를 전선으로 보냈다. 악랄가츠는 이기자 용사가 행군을 하듯 당당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그녀들에게 말했다.

가츠     :  하이. 하와유? 아임 프롬 사우스 코리아. 유 리브 인 히어?

아니 어쩜 저렇게 정직한 발음과 억양으로 매끄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그런 악랄가츠를 본 누나들은 덩치가 큰 DSLR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악랄가츠에게서 전문 포토그래퍼의 포스가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가츠     :  훗. 방금 들었음?
레인맨  :  님 좀 짱인듯.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아무래도 해수욕장이 맞는 듯!"

의기양양해진 악랄가츠는 계속되는 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악랄가츠의 의기양양함은 하늘로 치솟을 기세였고, 바로 그때 스타일리시한 세 명의 미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레인맨  :  저 언니들 완전 엣지 넘치는데요? (오랜만이다 엣지...)
가츠     :  어쩌라고요.
레인맨  :  사진 한번 찍자고요. 악랄가츠, 파이팅! ㅎㅎ

자신감 넘치겠다, 모델 좋겠다, 옆에서 형이 부추기겠다, 악랄가츠는 군말없이 그녀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들은 악랄가츠가 채 다가기기도 전에 포즈를 취했다. 뭐지? 악랄가츠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그녀들도 반한 것인가?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사실 그녀들은 앞서 언급한 '우리 사진 찍어 주세요' 족이었다.
그녀들은 거침없이 카메라에 맞섰다.
마치 '녀석들, 예쁜 건 알아가지고. 그래, 어디 한번 찍어 봐'라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촬영이 끝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한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개와 함께 뛰고 있는 백형. 어시니보인 파크를 비롯한 캐나다의 공원에는 개와 함께 운동이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능수능란한 솜씨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백형.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겁나 빠른 스피드로 공원을 질주하고 있는 흑형. 완전 간지였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공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아서 악랄가츠에게 부탁을 하려던 찰나, 그는 모델을 발견한 나의 표정만 보고도 알아서 움직였다.

가츠     :  하이.
외쿡인  :  슈어. ^^

"????????????????????"

그저 인사 한번 했을 뿐인데 '슈어'란다. 누구는 정중하게 부탁을 해도 까이는 판국에 누구는 물어보지도 않고 승낙을 받는다. 악랄가츠, 아무래도 그는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악랄가츠는 프로였다!"

공원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호텔로 복귀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다정히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커플이 보였다. 여여커플이 아닌 남여 커플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냥 가려고 했지만 악랄가츠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내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사진을 찍었다.

가츠  :  한번 보세요. 사진 어때요?
커플  :  Excellent! Awesome! Fantastic!

커플은 악랄가츠가 찍어 준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감탄사를 연발했다. 커플의 화려한 리액션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벗어난 악랄가츠, 그에게서 프로의식이 느껴졌다. 그런 악랄가츠의 모습에 샘이 난 나머지 나 또한 사진을 찍어 커플에게 보여 주었다.

레인맨  :  어때요? 괜찮죠?
커플     :  Not Bad.

웁스... 커플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여행사진의 매력!"

여행사진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이다. 여행지의 풍경을 사람과 함께 담으면 몰개성은 사라지고 사진에 담기는 이야기와 추억이 더욱 풍성해진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지만 들입다 풍경만 찍어 대는 여행사진에서는 아무런 매력을 찾을 수 없다.

캐나다여행을 하며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들 속에는 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담겨 있다. 악랄가츠 덕분에 보다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Assiniboine Park, Winnipeg, Manitoba, Canada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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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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