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 손을 붙잡고 재래시장에 다녔던 기억이 있다. 저녁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재래시장을 찾은 엄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짐도 함께 들어 드리고, 물건값을 깎는 엄마 옆에서 지원사격을 날리기도 하고, 그렇게 얻은 점수로 군것질거리를 사달라며 조르기도 하고, 6년 인생의 심오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대화를 나누던 재래시장만의 즐거운 추억이 있다.

"마트 대신 재래시장!"

이러한 추억 때문일까? 나는 재래시장을 아주 좋아한다. 재래시장에는 추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상인들의 소박한 모습에서는 삶의 체취와 정을 느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가공식품이나 제조품은 차치하더라도 그 어느 곳보다 신선하고 저렴한 야채와 과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형마트 때문에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캐나다를 대표하는 재래시장, 장딸롱 마켓!"

재래시장은 세계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재래시장에 가면 현지인들의 실생활과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최근 여행을 다녀온 캐나다에도 수많은 재래시장이 있었다. 도시별로 규모와 분위기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재래시장만의 활기차고 소박한 느낌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그중 몬트리올에서 만난 재래시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몬트리올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지역에 '장딸롱(Marche Jean-Talon)' 이라는 이름의 재래시장이 있다. 농부들의 시장(Farmer's Market)으로 불리기도 하는 장딸롱 시장은 몬트리올 주변에 위치한 농장으로부터 신선한 야채와 과일 등을 공급받아 장사를 하는 야외시장이다.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위니펙의 포크스 마켓, 오타와의 바이워드 마켓, 퀘벡의 구항구 시장 등 여러 곳의 재래시장을 둘러보았지만 야외시장은 장딸롱 시장이 유일했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활기찬 시장의 분위기!"

캐나다여행 16일째가 되던 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몬트리올의 다운타운에는 '언더그라운드시타'라 불리는 지하도시가 구축되어 있어 비가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지만 장탈롱 시장은 다운타운의 외곽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야외시장이기 때문에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저 얄밉기만 했다. 그래도 시장 안쪽은 천막과 지붕이 비를 막아 주어서 돌아다니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장탈롱 역에서 내려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지 않았다. 몬트리올 사람들은 왠만한 비는 그냥 쿨하게 맞고 다닌다고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정말 거센 비가 아니면 우산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쓰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산을 쓰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우산을 다시 펼쳐 들었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신선한 과일과 야채의 향연!"

장딸롱 시장에 가면 신선한 과일과 야채의 화려한 향연을 엿볼 수 있다. 캐나다의 다른 재래시장의 경우 가공식품이나 꽃 등이 적절한 비율로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장딸롱 시장은 야채와 과일 가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방금 막 재배된 것처럼 좋은 신선도를 유지한 채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과일과 야채들을 바라보면 시장이 아니라 박람회나 전시회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풍부한 색감을 가진 과일들은 형형색색의 화려함으로 카메라를 유혹한다. 프레임 가득 채워지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피사체는 사진 소재로도 나쁘지 않다. 과일의 향기 또한 대단하다. 제법 멀리 떨어져서도 맡을 수 있을 만큼 달콤하고 짙은 향기를 내뿜는 과일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먹으라고 있는 과일이 꽃보다 화려하고 향긋하니 이거 일종의 월권 아닌가?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화려한 과일쇼에 넋이 나가 있을 무렵 어여쁜 꽃들이 등장했다. 먹지는 못하지만 보는 것 만으로 배부르고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이 또 꽃 아니겠는가. 장딸롱 시장의 꽃과 식물들은 과일과 마찬가지로 몬트리올 근처 농장에서 재배되었다. 그래서 꽃잎 하나하나가 생기 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과일쇼에 이어 황홀한 꽃쇼에 취해 있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달콤한 과일 향기와 향긋한 꽃향기가 뒤섞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시장 안에 있는 빵집에서 도너츠를 사 먹기는 했는데 아침도 부실하게 먹은 터라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장딸롱 마켓의 자랑, 시식 코너!"

그러나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맛있는 과일들을 종류별로 먹어 볼 수 있었기 때문! 장딸롱 마켓은 가게마다 시식 코너를 마련해 놓고 있다. 캐나다의 재래시장에서 시식 코너를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장딸롱 시장에는 시식 뿐만 아니라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사면 추가로 몇 개를 더 넣어 주는 '덤' 문화도 있었다.

배가 고픈 나머지 장딸롱 시장의 과일들을 열심히 시식했다. 그 결과 과일의 맛은 반반이었다.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오렌지 등 열대과일은 맛이 아주 좋았지만 사과나 딸기, 토마토 등은 우리나라 과일에 비해 훨씬 맛이 없었다. 특히 딸기의 맛이 가장 별로였는데 캐나다 사람들이 이런 딸기만 먹고 살았다면 우리나라의 딸기를 꼭 한번 먹여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신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어쨌든 시장을 돌아다니며 과일도 열심히 시식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던 것 같다. 장딸롱 시장의 상인들은 과일의 모습과 시장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여행자들이 익숙한지 카메라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편안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같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하는 것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캐나다에서 만난 재래시장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시장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광장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짐작하건대 우리나라로 치면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프로그램을 컨트롤 하는 방송 스탭의 자세가 매우 공손해 보인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장딸롱 시장에는 옥수수도 팔고,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이렇게 귀여운 감자도 판다. 감자의 색깔이 독특하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시장 내 작은 또 다른 작은 마켓에서 팔고 있는 병맥주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잼을 고르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잘 익어 슈가포인트로 도배된 어른 바나나와 이제 막 노랗게 변한 아이 바나나의 대비가 재미있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비를 맞은 사과의 모습이 식욕을 더욱 자극하는 것 같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푸짐한 시식용 오렌지와 사과. 시식용 과일들은 생각보다 금방 사라진다. 빈 접시는 또 신선한 과일들로 금방 채워진다.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Montreal, Quebec, Canada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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