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지금으로부터 358년 전, 1653년 1월에 네덜란드 텍셀항을 출발한 상선 스페르베르호(Sperwer)는 같은해 여름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혹독한 태풍을 만나게 된다. 풍랑과 싸우던 배는 암초에 부딪치고, 결국 크게 파손되어 전복되고 만다. 그렇게 그들은 제주에 표착했다. 1653년 8월 16일의 깜깜한 새벽이었다.

"헉헉... 다들 괜찮아?"

새벽 동이 트자 해안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고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모인 사람의 수를 세어 보니 36명, 64명의 선원 중 선장을 포함한 28명의 선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원들은 슬픔에 잠겨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저것들은 뭐지?"

다음날 정오가 되자 지나가던 제주도민 한 사람이 일행을 발견했다. 사람은 사람인 것 같은데 노란 머리에 파란 눈, 코가 큰 아주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거 이상한데?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어."

이상한 생명체무리가 제주도 해안에 모여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다음날 정오 2천여 명의 기보병이 스페르베르호 생존자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의 잔해들을 조선인들이 취합했다. 표류물 수집이 진행되는 동안 몇 사람이 약간의 녹비와 철 등을 훔쳤고, 그들은 스페르베르호 생존자들이 보는 앞에서 처벌당했다. 그것은 생존자들의 물건이 약탈될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움직임이었다.

그후 스페르베르호 생존자들은 대정으로 이송되었다. 비교적 상태가 온전한 사람은 말을 타고 이동했으며 부상이 심한 사람은 들것에 실려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대정에서 하룻밤을 묵은 생존자들은 명월진을 거쳐 제주목에 도착했다. 그곳은 목사라 불리는 제주도의 총독 관저였다. 제주목사 이원진은 생존자 중 한사람에게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전남 여수 하멜동상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동상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동상 2011, ⓒ Reignman


"헤.. 헨드릭 하멜입니다."

그렇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하멜표류기'의 주인공 하멜이다. 1653년 제주도에 표착했다가 오랜 억류생활 끝에 탈출하여 1668년 본국으로 돌아가 기행문을 통해 한국을 소개한 역사적 인물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에는 바로 이 하멜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이 2006년 6월 1일 27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한 <하멜수변공원>에는 2만 5천㎡에 이르는 면적에 잔디광장, 야외무대, 친수 공간, 놀이시설, 하멜등대, 하멜동상 등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공원에서는 돌산대교와 장군도, 여수항 등이 한눈에 보이며 하멜 동상 뒤쪽으로는 제2돌산대교가 건설 중이다.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이곳이 바로 하멜이 자유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 출발지!"

제주도에서 서울로 압송된 하멜과 그의 일행은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여수와 순천, 남원에 분산 수용된다. 여수에 오게 된 12명 중에 하멜이 있었고,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하멜이 여수에 온 다음해 부임한 이도빈 수사는 하멜과 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며, 그들은 양모장사를 통해 탈출할 배를 살 수 있는 돈도 벌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수사 정영은 인자하지 못했다. 하멜과 일행은 힘든 생활을 하다가 결국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하멜과 일행은 1666년 9월 4일 밤이 되자 전라좌수영성 담을 넘어 부둣가로 향했다. 그리고 썰물이 시작될 때 군선 옆을 지나 남쪽 끝을 향해 달렸다. 저녁 무렵 부산 끝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그들은 한국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하멜공원의 상징, 하멜등대!"

하멜공원을 상징하는 하멜등대는 하멜이 여수 지역에 머무르다가 네덜란드로 건너간 것을 기념하고자 국제로타리클럽이 추진하는 하멜기념사업과 연계하여 2004년 12월 23일에 건립된 무인등대이다. 하멜등대는 10m 높이의 콘크리트 등대 몸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등명기는 250mm 기종이다.

또한 앞서 사진으로 소개한 하멜동상은 무게 140kg, 높이 1.2m의 동상으로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시의 하멜 동상과 같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보면 아담한 크기 때문인지 동상의 모습이 아주 귀엽고 깜찍하게 느껴진다.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돌산대교 2011, ⓒ Reignman


"주변 풍경이 아름다운 하멜공원!"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하멜공원을 거닐면 나무숲이 우거진 공원을 산책하는 것과는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여수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과 하멜등대 뒤쪽으로 보이는 돌산대교, 장군도를 보고 있으면 상큼한 바다 향기와 함께 남도의 정취가 오롯하게 느껴진다.

"자네 어디에서 왔는가?"

카메라를 들고 하멜공원과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열심히 담고 있노라면 마실 나온 동네 어르신들께서 말씀을 걸어 오신다. 서울에서 여행을 왔다고 하면 지금 네가 사진을 찍고 있는 저것이 돌산대교이고, 그 오른쪽에 있는 작은 섬이 장군도라고 알려 주신다. 또 여수는 어디가 좋고 어디에 가면 맛있는 토산 음식을 맛 볼 수 있다며 알짜 정보까지 알려 주신다. 여수는 자연도 좋지만 사람이 더 좋은 곳인 것 같다.

 

전남 여수 고소 천사 벽화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고소 천사 벽화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고소 천사 벽화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고소 천사 벽화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고소 천사 벽화 2011, ⓒ Reignman


"바다의 스카이라인, 고소 천사 벽화!"

하멜 공원 맞은편에는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산동네인 고소동이 있는데, 이 고소동 골목길이 예쁜 벽화 거리로 변신하고 있다. 여수시는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대비하여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고 산동네 및 골목길의 열악한 환경을 시각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고소동 골목길 1004m를 '천사 골목'으로 이름 붙이고 테마가 있는 아름다운 벽화거리로 조성하고 있다.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형형색색의 화려한 벽화들이 고소동 골목길에 채워지고 있다. 벽화의 내용은 아무래도 거북이나 물고기 등 바다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이는 '천사골목'이 돌산대교와 제2돌산대교, 여수해양공원의 조망 포인트에 있는 만큼 해양스토리와 매치될 수 있는 벽화들로 조성하려는 계획에 의한 것 같다. 일주일 전 여수에 방문할 때만 해도 한창 벽화 작업이 진행 중이었으니 이제 곧 작업이 마무리되면 하나의 관광 명소로 탄생할 것 같다.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전남 여수 하멜공원 2011,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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