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폭설로 인해 오후 늦게 도착한 제주. 먹구름 덕분에 가뜩이나 구경하기 어려운 햇빛이 어느덧 뉘엿뉘엿 사라져 간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오후 5시만 되어도 저녁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겨울이 싫다. 추운 것도 싫지만 해가 짧아지는 것 만큼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지는 겨울이 싫다. 물론 겨울이 지닌 장점과 매력도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겨울이 싫다.

늦게 출발한 만큼 도착도 늦어지기 마련, 계획했던 일정은 꼬여 버렸고, 중간에 시간이 나지 않아 점심까지 굶었다. 춥다. 배도 고프다. 본격적인 여행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심신의 피로가 몰려온다. 애꿎은 담배에만 자꾸 손이 간다. 마음의 여유가 절실한 순간이다.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말이다! 안녕?"

제주승마공원에 들러 말에게 말을 걸어본다. 가까이 다가가 어색한 손짓으로 말의 주의를 끌어본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 내려다보던 말들도 이내 먼 산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시선을 주지 않는다. 다른 말에게 다가가 본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 나의 손짓과 음성에 잠깐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외면한다. 살짝 기분 나쁠 뻔 했지만 잠시나마 나눈 교감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챙긴 것 같다. 기분 좋다. 이제 조금 떨어져 찬찬히 말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말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아이고, 날씨가 이렇게 추워도 되는 건지... 서울에 비하면 한참 높은 기온이지만 제주도의 칼바람이 체감온도를 대폭 떨어뜨린다. 실내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몸을 녹인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순간 전에 없던 또다른 여유가 생긴다.



"제주도에 말이 몇 마리나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나라의 말 관련 산업의 규모는 또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제주승마공원의 서명운 대표가 타지에서 온 여행객들을 상대로 말과 승마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한다. 제주도에는 26곳의 승마장과 그외 수많은 목장에서 2만여 마리의 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말 관련 산업의 규모는 무려 7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6조 9천 8백억 원은 경마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퍼센티지로 환산하면 무려 97%이상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고, 나머지 200억 원 정도가 승마 및 기타 분야의 규모라고 볼 수 있다.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그런데 지나치게 경마에만 치중되었던 말 관련 산업구조가 서서히 변화를 보이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말까지 유럽의 왕가를 중심으로 돌았던 국제승마연맹 회장 자리가 지난 2006년 처음으로 아랍권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참고로 현재 국제승마연맹의 회장은 요르단 공주 시절 올림픽 승마 종목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두바이 왕비 '하야 빈트 알 후세인'이 맡고 있다.

"아, 지루해!"

사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대상에 따라 흥미롭게 들릴 수도,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경마에만 치중된 말 산업구조가 서서히 승마 쪽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GNP가 늘어나면 와인 산업과 골프 산업에 이어 승마 산업이 발전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변화가 우리나라에도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이제 직접 승마에 도전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설레는 기분으로 하나둘씩 말에 오르는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말을 처음 타본다는 지인의 자세가 제법 능숙해 보인다. 말을 타고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고, 속도를 내며 승마를 즐기고 또,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까지 겸비하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은 말을 타봐야 한다고 하는데 이건 뭐 자세만 보면 지금 당장 올림픽에 출전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말을 폼으로 타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말과의 교감, 그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 승마의 진정한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

제주승마공원의 말타기는 20분 이상 지속된다. 1백만㎡ 이상의 부지에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벗삼아 여유롭게 즐기는 제주승마공원의 트래킹은 좁디좁은 트랙을 5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뱅뱅 돌고 또, 말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멈춰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식의 승마와는 다르다. 10km를 지나 30km를 지나 최대 80km까지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를 따라 말과 함께 달리다 보면 말에서 내리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30여 분 정도의 말타기를 끝내고 말에서 내린다. 땅바닥과 발바닥이 만나는 순간, 짧은 시간 느껴지는 그 묘한 기분이 참 좋다. 잃어버렸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순간이다.

도움 주신 분들 ☞ 제주아띠 (www.jejuatti.com) & 티웨이항공 (www.twayair.com)


제주도 제주승마공원 2010, ⓒ Reig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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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Reign [rein] = 통치, 지배; 군림하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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