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다





나름 우여곡적을 겪어 가며 도착한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그런데 분위기가 어딘가 좀 수상합니다.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차가 지나다닙니다. 그리고 사람이 나밖에 없습니다. 평일이라 사람도 없고 차들만 지나다니는 건가. 어쨌든 소정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다른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MMS) 담양 도착!"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담양으로 향하던 중 문자가 하나 날아옵니다. 먼저 출발한 일행과 일정을 맞춰 적당한 선에서 합류하기로 했거든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소쇄원과 보성의 녹차밭 등을 관광하고 하루 일정이 마무리된다고 하여 나는 나대로 여행을 하다가 보성 숙소에서 만나기로 한 것입니다.


어차피 일행의 뒤를 쫓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혼자만의 여행을 계속해서 이어 나갑니다. 그러다 갈증도 나고 길도 좀 물어볼 겸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듭니다.

"담양에서 보성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요?"

편의점 직원은 보성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광주를 거쳐서 가야한다고 상냥한 말투로 전했습니다. 남자 직원이라 그런지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그의 친절함에 반해 담양의 이미지가 더욱 좋게 느껴집니다. 그럼 이제 광주로 가야겠습니다.


담양문화회관 앞에서 대나무 피리를 불고 있는 동상이 하나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주위가 온통 대나무입니다. 담양은 대나무로 아주 유명한가봐요. 죽녹원도 가보고 싶었는데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시간도 많지가 않아 그냥 광주행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일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광주와 담양은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2,000원 정도의 요금을 내면 잘빠진 고속도로를 씽씽달려 3~40분 만에 광주에 도착합니다. 사실 그동안 담양과 보성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담양이 광주 윗쪽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보성이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수확은 비단 메타세콰이어길을 실제로 본 것 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정보를 얻고 또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유익한 여행이 됐던 것 같습니다.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보성행 버스에 오릅니다. 광주에서 보성은 거리가 그렇게 먼 것 같지는 않지만 커브길이 많고 도로가 좁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대략 1시간 40분 정도? 요금 또한 비쌉니다.

그런데 창 밖의 풍경이 아주 예술입니다. 아름다운 강과 저수지가 연속적으로 펼쳐지고 그렇게 원하던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도로변에 늘어서 있습니다. 가끔은 야생동물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기사님은 오전에만 두 번씩이나 멧돼지를 목격했다고 합니다. 담양과 광주를 연결하는 식상한 고속도로와는 차원이 다른 풍경입니다.


창 밖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웠음에도 잠시 눈을 붙입니다. 많이 걸었더니 몸이 좀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꼬불꼬불 커브길에 멀미도 조금 느꼈던 것 같습니다. 눈을 뜨니 어느덧 보성입니다. 터미널을 보니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하루종일 터미널만 찍고 다닌 것 같아서요. 약속 장소인 다빈치 콘도에 가려면 버스를 한번 또 타야 합니다.

"이쯤 됐으면 약간의 짜증, 사치는 아니겠지?"



터미널의 소박한 풍경에 약간이나마 느꼈던 짜증이 순식간에 녹아내립니다. 터미널을 둘러보며 율포행 버스를 기다립니다. 한 할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오십니다.

"ㅁ리ㅏㅁㄴㅇ라ㅓㅁㅇ라ㅓㄴㅇㄹ54ㄴㅇ라ㅓ ㅇㄴㄹ'ㅣㅡㅁㅇㄹ"
"네(^^)"

뭐라고 계속 말씀을 하시는데 앞니의 부재 및 총체적인 치아 부족으로 인한 부정확한 발음과 너무나도 심한 사투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겠습니다. 그냥 웃으며 네네 하고 대답을 합니다.


버스에 올라 할머니께서 주신 뻥튀기를 먹으며 방금 전 상황을 되새겨 봅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피식거립니다. 큰 웃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드디어 일행과의 약속장소인 율포에 도착했습니다. 잔잔한 파도소리에 이끌려 칠흙같이 어두운 밤을 헤치고 해변가를 잠시 걸어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시원한 바람과 파도소리에 몸이 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숙소로 들어가 일행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습니다. 밥이 아주 꿀맛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주전부리를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혼자서 그렇게 가보고 싶어했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다녀왔다고 자랑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카메라의 사진을 확인하던 지인이 한마디 합니다.

"여기 우리가 다녀온 메타세콰이어길이 아닌데?"

순간 철렁한 마음에 지인의 카메라를 확인합니다. 제가 갔던 곳과 확실이 다릅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사람이 나뿐이었지만 이곳은 사람도 많고, 자전거도 많이 있습니다. 찻길도 아니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먹을거리를 파는 상인들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다녀온 것일까, 꿈에 그리던 메타세콰이어길이었는데 애먼 곳에 다녀오다니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듭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사실 속으로 짝퉁일 거라는 의심도 약간은 품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음 로드뷰를 이용하여 메타세콰이어길을 찾아봅니다. (위 사진) 로드뷰에서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풍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담양까지 가서 보고 오지 못한 풍경을 로드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헛웃음만 쏟아집니다. 결국은 로드뷰로 감상하게 된 메타세콰이어길...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꿈을 꿉니다.

"내 꼭 다음에는 오리지널 메타세콰이어길에 다녀오리라."


지인이 찍은 사진과 내가 찍은 사진의 다름에 좌절을 하고 밖에 나가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합니다. 방으로 돌아오니 룸메이트가 과자를 먹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오죽했으면 먹다 잠이 들었을까. 이쪽 여행길도 뭔가 만만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일까요? 내일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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