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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심리묘사

<허트 로커>가 드디어 국내에 상륙했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 오스카 6개부문을 수상한 <허트 로커>는 무려 1년여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한국의 관객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될만한 걸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허트 로커>의 완성도와 작품성은 과연 오스카 작품상 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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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쟁영화이지만 막상 피튀기는 전투는 거의 없다. <블랙 호크 다운>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영화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전투를 영상에 담아내며 전쟁의 리얼리티를 전달하지만 <허트 로커>는 인물의 심리묘사에 초첨을 맞추며 보다 사실적인 실감을 전달하고 있다. 예컨대, <디어 헌터>란 전쟁영화에는 전투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의 공포와 그로 인한 폐단의 심각성은 그 어떤 전쟁영화에서보다 여실히 표현된다. 러시안 룰렛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에서 오는 공포와 서스펜스는 제아무리 화려한 CG와 액션, 거대한 스케일을 뿜어낸다 하더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허트 로커>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버섯구름을 동반한 폭발장면은 그저 눈요기에 불과할 뿐, 진정한 서스펜스는 바로 인물의 심리묘사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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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서린 비글로우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데에는 여성감독이라는 이유가 있다. 여성으로서 전쟁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것, 여성으로서 남자들의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낸시 마이어스나 노라 에프론과 같은 감독을 보면 여성 특유의 감성과 여성의 심리를 영화에 담아내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 여성감독은 그들과 같아야 한다는 필자의 편견때문에 캐서린 비글로우의 역량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성별은 그리도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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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tage Pictures / Summit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강렬한 영상의 아우라

<허트 로커>의 시각효과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극초반 전투 시퀀스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버섯구름 따위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차라리 국산 전쟁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가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트 로커>의 영상에서 강렬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사실적인 촬영기법과 단 한 컷의 낭비도 없는 편집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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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헬드 혹은 쉐이키 캠이라는 촬영방식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촬영하는 기법이기 때문에 화면이 너무 흔들리게 되면 자칫 어지러울 수도 있으나 그만큼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담아낼 수 있다. 짐작하건데 <허트 로커>의 촬영은 90%이상 핸드헬드 기법으로 진행된 것 같다. 그래서 영상만 놓고 본다면 다큐멘터리를 연상케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동적인 영상을 자랑한다. 조금 과장하면 그냥 전쟁터에서 몰래 촬영을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오스카 촬영상은 <아바타> 에게 빼앗겼지만 배리 애크로이드 촬영감독이 발군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편집 역시 기가 막힌 수준이다. 130분이라는 짧지 않는 러닝타임 내내 숨이 콱 막히는 이유에는 자르고 붙이는 작업의 세련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하나의 컷이지만 지대한 함의를 담고 있는 컷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영화의 울림을 더해준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피폐 때문인지 앞다리를 저는 고양이의 등장이 인상적이었다.

ⓒ Voltage Pictures / Summit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적막함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

사실 <허트 로커>의 서스펜스는 <디어 헌터>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다. 러시안 룰렛은 불안과 긴장을 넘어 공포와 두려움까지 느끼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두려움과 맞서 싸웠던 <디어 헌터>의 등장인물들과 공포에 대한 교감을 나눈 경험이 있다. 살인적인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에는 로버트 드니로와 크리스토퍼 월켄의 호연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허트 로커>의 서스펜스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적막함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는 가히 압권이다. 긴박감을 느끼게 하는 배경음악을 깔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폭탄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상황에서 전달되는 서스펜스는 적막함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에 비할바가 못된다. 무엇보다 광활환 사막을 배경으로 850m의 거리를 두고 테러범들과 저격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허트 로커>의 백미다. 적막함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도 우리도 자신의 심장소리에 오롯이 귀를 기울인다.Reignman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간다. 그런데 팀의 리더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만큼은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크리스 헤지스(뉴욕타임스 이라크 특파원)의 말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이것은 <허트 로커>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공포이며, 대단히 위험하고 무서운 행태임과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폐단의 심각성을 까발리는 묵직한 메시지다. 크리스 헤지스의 말은 다음과 같다.
  •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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